포항에서 영덕으로 가는 7번 국도.차창으로 확 들어오는 짠 바닷내에 속이 다 시원하다. 바닷가는 피서객들로 알록달록해졌다.
포항에서 20여분 가다보면 영일군 흥해읍이 나온다. 흥해읍은 '회나무 전설'의 고장. 조선 초엽 유명한 풍수 이성지가 비학산에 올라 흥해읍을 살피고 "오래 동안 번창할 지세지만 나병이 많아 사람 살 곳이 못된다"고 한탄했다. 묘책으로 나온 것이 지하의 수분을 제거하고 해풍과 습한 바람을 막아줄 회나무를 심는 것.
영일민속박물관(관장 최상득)에 들어서면 우선 양 편에 우뚝 서 있는 회나무가 눈에 띈다. 오른쪽에 있는 회나무는 수령이 600년이나 됐다. 시름시름 앓던 것이 지난 5월 막걸리 25말이나 먹고 회생했다. 나뭇잎이 한결 진하고, 잔가지가 튼실해졌다고 한다.
매운 시집살이의 한이 서린 베틀, 어느 규수의 손에서 귀염받았을 가위며, 골무며, 인두. 첫날밤의 설레임이 새겨진 혼례복. 쟁기 지게 도리께 등 궁색했던 농부의 농기구들….
민속박물관은 선인들의 손때를 통해 생활사를 되돌아 볼 수 있어 귀한 교육 공간이 된다. "밥 없으면 피자 먹으면 되잖아?"라고 반문하는 자녀들에게 입에 풀칠하기도 어렵던 옛날을 설명하는데 이 만한 곳이 없다.
전국에 민속박물관이 산재해 있지만 바닷가에 위치한 영일민속박물관은 옛 어부들이 사용한 어구들을 전시한 것이 특색. 뱀장어 작살, 뜰채, 잠수복 등은 보기 드문 전시품들이다.
총 전시품은 4천 700여 점. 전시실은 생산관(제1전시실)과 생활관(제2전시실) 2개 90여 평. 유물보관창고와 초가집을 합쳐 총 부지는 1천442평.
생산관인 제남헌(濟南軒)은 옛 고을 수령이 집무를 보던 곳. 조선 헌종 1년(1835년) 건축된 경북도 문화재자료 250호. 지난 1925년 현 위치에서 동남쪽으로 70m 떨어진 흥해읍 사무소로 옮겨 회의실로 사용하다가 75년 다시 현위치로 이전됐다.생산관은 말 그대로 옛 선인들이 생업을 위해 사용한 각종 도구들이 진열돼 있다. 물레를 비롯해 베틀, 실감는 실꾸리, 실꾸리를 넣어주는 북 등 직물기구. 보리나 콩을 탈곡하는 도리깨, 멍석위에 곡식을 말리는데 쓰는 멀게, 소여물을 썰던 작두 등 농업기구에 새우잡이통, 투망그물 등 어구들이 전시돼 있다.
국보 제264호 영일냉수리신라비(503년)의 모조품도 전시돼 있다. 국보 242호 봉평신라비(524년)보다 앞선 현존 최고(最古)의 신라비. 진품은 신광면사무소 누각에 보존돼 있다.
모두 지역 인근에서 수집한 것. 바닷가에서 풍파를 겪으며 살던 민초들의 숨결이 가득 묻어난다.
지난 85년 신축한 생활관(제2전시실)은 의식주를 중심으로 한 생활도구들을 모아놓은 곳이다. 혼례가마에서부터 상여까지, 사람이 태어나 살다 죽기까지 가까이 한 소품들. 정갈한 아궁이와 식생활 도구가 있는 부엌, 손님 맞던 사랑방, 아낙네들의 내실이 실물크기의 인형으로 재현해 놓았다.
짚신을 삼던 신꼴, 안경대, 부싯돌, 나무 재떨이, 다듬이, 각종 제기, 도량형이 반질반질 손때 묻은 채로 전시돼 있다. 고려말 포은 정몽주의 위패를 오천서원으로 모셔올 때 사용했다고 하는 상여는 나무로 장식을 깎아 만들어 옛맛이 물씬 난다.
영일민속박물관은 흥해읍 중심에 자리잡고 있다. 칠포 해수욕장과 청하 보경사, 물 맑기로 소문난 청송 상옥 하옥 계곡과도 인접해 있다.
요즘 방학숙제에는 어김없이 견학이 포함돼 있다. 동해안의 절경을 맛보고 돌아가는 길. 자녀들의 방학숙제가 걱정된다면 영일민속박물관을 둘러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다만 주차장이 없어 인근 도로변에 주차해야 하는 것이 불편하다. 대중교통을 이용하려면 포항시내버스 107번(11분 간격), 좌석버스 500번(23분 간격), 550번(22분 간격)을 타면 된다. 입장료는 어른 300원, 청소년 200원(초등생은 무료).金重基기자 filmtong@imaeil.com
댓글 많은 뉴스
문재인 "정치탄압"…뇌물죄 수사검사 공수처에 고발
홍준표, 정계은퇴 후 탈당까지…"정치 안한다, 내 역할 없어"
세 번째 대권 도전마저…홍준표 정계 은퇴 선언, 향후 행보는?
대법, 이재명 '선거법 위반' 파기환송…"골프발언, 허위사실공표"
[매일문예광장] (詩) 그가 출장에서 돌아오는 날 / 박숙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