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음집은 지금도 있었다. 덜커덕! 문이 열리는 순간, 하얗게 뿜어져 나오는 얼음안개가 시야를 가렸다. 엄습하는 냉기에 저절로 움츠러드는 몸을 추스르며 들어선 냉동 창고. 바닥엔 살얼음이 깔려있고 바위 덩어리만한 통얼음이 천장까지 쌓였다. 영하 27℃. 1분도 채 안돼 온 몸이 으스스 떨렸다. 아마 북극 날씨면 이 정도로 추울까?
지난 24일 찾아 갔던 대구 침산동 대양수산 제빙 공장. 그 속은 폭염 속의 한겨울이었다. 숨이 턱턱 막히는 한여름 무더위를 잊고 지내는 사람들. 남들은 덥다고 아우성이지만, 더울수록 더 신나는 사람들이 바로 이 공장 직원들이다.
6월 중순부터 8월 중순까지의 두달 간은 제빙 공장이 가장 바삐 돌아가는 성수기. 요즘은 집집마다 냉장고가 있어 예전 같잖지만, 집중되는 얼음 주문량을 맞추느라 직원들은 눈코 뜰새 없이 바쁘다.
현재 대구에서 돌아가는 얼음 공장은 대양·동보·춘전 등 8군데. 이곳에서 만들어지는 무려 135kg이나 되는 커다란 통얼음은 세월이 바뀌었어도 30여년 전 제작 방식을 여전히 고수하고 있다. 예전보단 시설이 많이 현대화됐지만, 통얼음 만드는 원리는 변함이 없는 것.
소금물은 온도가 영하로 떨어져도 얼지 않는다는 사실에 착안했다. 냉매를 이용, 빙점 이하로 온도를 낮춘 소금물에 빈 통을 넣고 물을 부어 하루나 이틀 정도 얼리면 커다란 통얼음이 되는 것. 투명하게 질 좋은 얼음을 만들기 위해 가는 대롱으로 산소를 주입하면 바깥 쪽에서부터 보기 좋게 얼기 시작한다.
요즘엔 식용 보단 생선의 신선도 유지용으로 많이 이용돼 완성된 통얼음은 분쇄기에서 작은 조각으로 쪼개지고 포대에 담겨져 시장 등지로 팔려 나간다.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는 말은 정말로 사실인가 보다. 제빙 공장에서 일한지 10년이 넘었다는 신순옥(61)씨. "여름에도 더운 줄 모르고 일한다"며 웃어 보였지만, 격세지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는 듯 했다. 불과 10년 전만 해도 불볕 더위 땐 얼음 수요가 폭증, 가격이 오르고 덩어리 얼음을 사가는 가정들도 많았지. 여름 휴가를 떠날라치면 커다란 아이스박스에 넣을 덩어리 얼음을 사는 건 기본이었고.그러나 지금은 어떤가? 집집마다 톡 건드리기만 하면 좌르르 얼음이 쏟아지는 냉장고가 있고, 냉동실에 넣어 얼리기만 하면 몇번이고 되쓸 수 있는 아이스팩이 아이스박스 얼음을 대신하고 있다.
춘전냉동의 사공종태(56) 대표. 30여년 전 135kg 1각에 1만원 하던 얼음값이 지금은 오히려 6천원으로 내렸다고 했다. 물가·인건비는 엄청나게 올랐는데도 말이다. 그래서 "대다수 제빙 공장들이 타산을 맞추기 위해 수산물 냉동업쪽으로 치중하고 있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었다.
이제는 사양산업으로 하나둘 문을 닫고 주차장이나 낯선 건물에 자리를 내 주고 있는 얼음 공장들. 지금도 덩어리 얼음은 만들어지고 있지만, 정겨운 '어름집' 풍경은 지금 먼 옛날의 추억으로 잊혀져가고 있다.
金英修기자 stella@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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