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어떤 주사

이태백이 장진주(將進酒)에서 예찬한 술은 호박 빛깔의 액체였으며, 소동파는 술 중에서 진일주(眞一酒)를 사랑했다. 호박 빛깔의 술을 마신 이태백의 취흥은 하늘을 나는 기쁨이었고, 진일주에 취한 소동파는 '눈 녹이고 구름을 헤쳐/유즙(乳汁)을 얻어서/빚어진 진일주...그릇도 맑고 우물도 맑고 안팎이 맑구나'라고 노래했다. 이태백은 색깔이 있고 정열적인 술을, 소동파는 거울처럼 맑은 술을 좋아했던 모양이다. 술을 즐기는 것은 시인.묵객이 아니더라도 동서(東西)가 한결같다. 다만 동양은 조용히 마시는 미덕을, 서양은 떠들고 춤추는 전통을 가지고 있다. 로마인들은 '첫 잔은 갈증 해소를, 둘째 잔은 영양을, 셋째 잔은 유쾌함을, 넷째 잔은 발광하기 위해 마신다'는 속담도 남겼지만 유교사회에서는 '비록 말술을 마셔도 말이 없어야 군자(醉中不言眞君子)'라며 주사(酒邪)를 꺼렸다. '술을 마시지 않는 사람으로부터는 사려분별을 기대하지 말라'라는 키케로의 명언도 있지만 동서고금을 통해 덕이 있는 치자는 애주가들이 많았다. 그러나 '사람이 술을 마시고, 술이 술을 마시고, 술이 사람을 마신다'는 교훈처럼 술 때문에 물의를 빚거나 폐해를 낳는 경우가 적지 않다. 심지어 '술은 전쟁보다 더 많은 사람을 죽인다'는 경구도 있다. 최근 환경부 산하 한 간부(1급)가 출입기자들과의 오찬 자리에서 폭탄주 서너 잔을 마신 뒤 성차별과 성희롱적 발언을 해 물의를 빚었다. 여성장관을 다소 비하하면서 일본식 발음으로 "사실 우리 아키코상은 미인"이라며 "우리 마누라와 동갑인데도, 아키코상은 아직도 곱다"고 했다. 또 동석한 여기자들에게 안경을 쓰면 매력이 50% 이상 떨어지니 벗고 다니라는 등의 말을 했다. 옛날 어떤 왕이 광대와 바보에게 각각 세상에서 가장 좋은 것과 가장 나쁜 것을 찾아오게 했다. 두 사람의 상자를 열어보니 다같이 사람의 혀가 들어 있었다. 말은 가장 좋은 것도, 가장 나쁜 것도 될 수 있다는 뜻이리라. 우리 사회에 성행하는 폭탄주 때문에 빚어진 파동은 이미 여러 차례 있었다. 어쨌든 이번 한 고급 공직자의 취중 말썽도 우리 술문화의 한 단면을 보여 주는 것 같아 씁쓰레하다. 이태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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