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북혈육 찾은 이산가족 표정

◈재혼부부 각각 자식 확인

○…북한에 각각 배우자와 자식들을 남겨두고 월남, 남한에서 결합한 부부가 27일 50년간 기다려온 북쪽 가족들의 생사를 확인, 회한의눈물을 흘렸다.

기막힌 사연의 주인공들은 이선행(80·서울 중랑구 망우2동), 이송자(81·여)씨 부부.

남편 이씨는 북한이 보내온 명단을 통해 전 부인 홍경옥(76)씨와 아들 진일(56), 진성(51)씨, 처조카들의 생존을 확인했지만 둘째아들 진성씨는 세상을 떠났다는 안타까운 소식을 들었다.

부인 이씨도 첫째 아들 박의식(61)씨와 조카들이 살아있다는 반가운 사실을 확인한 반면 둘째 아들 산웅씨의 사망소식도 함께 접했다.

◈어머니 배웅모습 눈에 선해

○…"항일운동을 위해 중국으로 떠나갈 때 엎드려우시던 어머니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합니다"

27일 북쪽에 작은 누나와 남동생이 생존해 있다는 통보를 받은 박영일(77·서울양천구 목동)씨는 지난 44년 2월 평북 선천군 신부면 농건동집에서 베이징으로 떠날 당시를 회상하며 눈물을 훔쳤다.

엎드려 우시던 어머니와 옷가지를 챙겨주시며 "살아서 돌아오라"고 신신당부를 하시던 아버지.

박씨는 지난 43년 의주농고를 다닐 당시 중정 임시정부 북경특파공작원으로 활동하던 형 항준씨의 영향을 받아 항일운동을 하다가 그해 2월~7월 5개월간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

46년 4월 형과 함께 부산항을 통해 입국한 뒤 고향으로 가려고 여러차례 시도했으나 항일운동 세력내 반공파와 친공파간의 갈등에 휘말려 끝내 가족들을 만나보지못하고 남쪽에 눌러앉게 됐다.

◈부모소식 몰라 끝내 울음

○…"어버지,어머니…"하며 참았던 울음을 터뜨렸다.

외아들인 민씨가 아버지 민우식(생존시 100세),어머니 강용이(〃96)씨와 생이별을 하게 된 것은 6·25전쟁이 한창이던 지난 50년 10월. 고향인 황해도 연백군 해성면에서 양복공으로 일하던 중 9·28 서울수복이 되자 자신이 한때 생활했던 서울의 친척들을 만나기 위해 여행증을 발급받아 내려 온 것이 부모님과의 영원한 이별이 될 줄 꿈에도 몰랐다.

○…"북측이 부모님의 생존사실을 확인하지 못함으로써 방북대상에서는 제외됐지만 고향에는 고모님과 삼촌들이 생존해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든다"는 민씨는 남,북은 이산가족 문제만큼은 마음을 열고 해결해야 한다며"다음 기회에 꼭 방북의 꿈을 실현, 부모님 산소를 찾아보는 것이 생애 마지막 소원"이라고 말했다.

◈회사직원따라 생이별

○…가족들을 모두 북에 남긴채 홀홀단신 월남한 김종인(71·여·수성구 신매동)씨는 언니 김복원씨의 딸 박정득씨만 생존해 있다는 소식을 접하고 눈물을 삼키며 가족들과 헤어진 기구한 사연을 토로.

김씨는 6·25 당시 경기도 개성에서 자신이 다니던 전기관련 회사차량으로 직원들이 한꺼번에 월남한 바람에 부모님과 언니, 남동생의 얼굴도 제대로 보지 못한채 생이별 하게 됐다는 것.

김씨는 "당시 가족들이 개성에서 대규모 인삼농장을 운영하고 있어 생활도 풍족하고 잘 살고 있을 것이라고 믿었는데 조카만이 살아 있다니 믿을 수 없다"며 "부모님과 남동생은 어찌됐느냐"고 가슴을 저미기도.

◈'핏덩이' 아들 눈에 아른

"한시도 잊은 적이 없습니다. 살아 생전 북에 두고온 처자식을 한번이라도 만날 날이 오기를 기원했지만 이렇게 생존 소식을 접할 줄이야…"

27일 오후 언론을 통해 북의 가족들이 생존해 있다는 소식을 접한 최성록(78·대구시 서구 비산1동)씨는 북받치는 기쁨을 억누르지 못했다. 그리고 속절없이 흘러간 통한의 생이별 세월 앞에 또다시 눈시울을 붉혔다.

황해도 황주에서 생후 1개월의 핏덩이 아들과 두 딸, 산후 조리로 누워있는 부인(유봉녀·75)을 뒤로 한 채 홀홀단신 남쪽으로 피신한지 50년.

쫓기듯 피난길에 오르느라 가족사진 한장 가져 오지 못하고 늘 가족들의 모습을 꿈속에서 그려온 최씨, 그는 더이상 어머니를 볼 수 없다는 설움에 비통해 했다.李庚達기자 sarang@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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