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남북 화해기류에 미묘한 돌출

한미연합사령부가 실시하는 한미 합동 지휘소훈련인 을지포커스 렌즈 연습이 남북 간의 '미묘한' 문제로 떠올랐다.

연례적인 이 훈련에 대해 북한이 '6.15 남북 공동선언' 이후 조성되고 있는 한반도 화해 분위기를 내세워 민감한 반응을 보였기 때문이다.

대남기구인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 대변인은 지난 19일 성명을 발표해 이 연습이 실시된다면 "사태는 6.15 공동선언 이전의 상태로 돌아가 북남 사이의 모든 접촉과 대화, 내왕(왕래)과 협력이 순간의 정체상태에 빠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특히 "북남 합의에 대한 배신행위이며 대화 상대방인 우리 공화국(북한)에 대한 공공연한 도발행위"라고까지 비난하며 이 훈련을 당장 중지하는 조치를 취할 것을요구하고 나섰다.

이 성명은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6.15 공동선언'에 합의한 이후 화해.협력 분위기가 한층 무르익고 있는 가운데 비교적 강한 논조로 나와 주목되고 있다.

우선 북한의 주장 가운데 눈길을 끄는 부분은 남북 공동선언 제 1항에 규정된 '자주'원칙을 남한이 '배반'하고 있는 것으로 간주하고 있다는 점이다.

조평통 대변인은 성명에서 "나라의 통일문제를 우리 민족끼리 힘을 합쳐 자주적으로 해결하기로 합의한 오늘에 와서까지 우리 공화국을 위협하는 외세와의 합동군사연습을 버젓이 벌인다는 것은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사태"라고 강조했다.7.4남북공동성명에 천명된 조국통일 3대원칙에도 '자주'가 가장 먼저 제시돼 있을 뿐 아니라 북한당국이 정상회담 합의 전인 지난 4월까지 남북 고위급 회담의 전제조건으로 내세워온 선행 실천사항에도 '외세와 공조파기 및 합동군사훈련 중지'가 첫째 항목으로 규정돼 있다.

주목되는 또 하나의 대목은 이번 연습에 대한 북측의 반응이 지난 4월 남북 정상회담 개최 합의 직후 실시된 한.미 연합전시증원(RSOI)연습과 5월말부터 하와이부근 해역에서 진행된 다국적군 훈련 '림팩-2000'과는 사뭇 다르다는 점이다.

당시 북한은 RSOI연습에 대해 조평통, 조선반핵평화위원회, 재북평화통일협의회등을 내세워 "조국통일 열망에 찬물을 끼얹는 무모한 군사적 불장난" 등으로 비난공세를 펼쳤지만 남북관계 개선 분위기에 역행하는 발언은 자제했었다.

또한 '림팩-2000'에 대해서도 남한 당국을 제외한 채 상대적으로 비난의 초점을 미국과 일본에 맞췄을 뿐이다.

이러한 것과 대조적으로 이번 조평통 대변인 성명은 미국뿐만 아니라 대화 상대방으로서 '남조선 당국'도 겨냥했으며 공동선언에 대한 '유린', '배신행위' 등으로 강도 높게 비난했다.

이러한 점은 남북한이 한반도의 냉전을 종식하고 새로운 화해와 협력관계를 모색하기 위해 노력을 경주하고 있는 상황에서 을지포커스 렌즈 연습이 미묘한 파장을 몰고올 가능성이 있음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그러나 조평통 대변인 성명이 앞으로의 남북관계 개선을 염두에 둔 '엄포성 발언'에 그칠 가능성이 크다는 게 대체적인 시각이다.

시기상 을지포커스 렌즈 연습 실시 이틀을 앞두고 촉박하게 발표됐다는 점과 남북관계의 지속적인 정체가 아닌 '순간의 정체상태'를 거론한 대목은 북한 당국도 한반도 화해.협력 분위기 조성에 의지가 강함을 시사하는 대목이라는 것이다.

또 군 당국이 나서지 않고 대남기구인 조평통이 제1선에 나섰다는 점은 이번 훈련을 군사적 문제로 삼지 않고 협상 대상으로 삼으려는 의도를 내비친 것이라는 해석도 일부에서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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