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공시절부터 김대중 대통령이 살았던 '동교동'집과 김영삼 전대통령의 '상도동'자택은 민주화 투쟁의 구심점이었다. 전국 방방곡곡에서 야당 인사들이 새벽부터 장사진을 이뤘고 동교동, 상도동 두곳은 이들 가난한 내방객들을 접대할 시래깃을 끓이느라 부산했었다. 당시 동교동과 상도동은 단순한 지명 이상의 '민주 투쟁의 요람'이란 함축된 의미로 받아들여졌던 것이다. ▲양김(兩金)씨를 잘 아는 야당 원로들은 "동교동은 예절이 깍듯하고 근엄한 반면 상도동은 뒤죽박죽으로 소탈했다"고 그 당시를 회상한다. 동교, 상도 두곳의 이러한 분위기는 두 사람이 나중에 집권한후의 통치 스타일과도 일맥 상통한다는 것이 이들의 중언이다. 어쨌든 군사정권 아래 인재도 돈도 없이 맨 주먹으로 민주화 투쟁 대열에 나섰던 야당 사람에게 '동교동'과 '상도동'은 마지막 희망이요 등불이었던 것이다. ▲DJ의 동교동 집이 철거됐다. 서울 마포구동교동 178의 1에 위치한 동교동 사저는 DJ가 지난 62년 3월 신촌의 사글세방에서 이사와 95년 경기도 일산으로 옮기기 전까지 살았던 곳이다. DJ는 이곳에서 대선을 세번이나 치렀나 하면 71년 1월에는 사제 폭발물이 날아드는 등 시련도 겪었다. 73년에는 중앙정보부에 의해 도쿄에서 납치돼 돌아온 DJ가 연금 생활을 한 곳도 동교동이었다. ▲동교동은 또 유신 말인 78년 긴급조치가 기승을 부릴때 당시 야당과 재야인사들이 모여 대책을 숙의한 곳이었고 85년 2·12총선의 황색 돌풍을 일으킨 산실이기도 했다. 이처럼 DJ의 애환이 서린 곳이어서 쉽사리 철거할 수 없다는 의견도 있었으나 건물이 낡고 비좁은데다 DJ 퇴임 후 경호 문제도 있어서 철거, 새 건물을 지어 단장키로 했다는 것이다. ▲DJ의 동교동 옛집은 역사의 뒤안길로 이제 사라졌지만 여당의 '동교동'계(系)는 여전히 남아 맹위(?)를 떨치고 있다. 아직도 모씨, 모씨의 가신(家臣)들이 칼자루를 휘두르고 여당인 민주당은 이들의 눈치 보기에 급급하다는 얘기도 심심찮게 나돈다. 이 어려운 때에 여전히 DJ를 정점으로한 가신정치냐는 비난의 소리도 없지 않은 것이다. 동교동 계도 동교동 옛집처럼 새로 태어나야 나라가 살 수 있다는 생각도 든다.
김찬석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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