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아! 우리 도자기(4)

가을은 누렇게 변해 가는 들판에서, 무성했던 콩잎이 떨어지고 열매만이 주렁주렁 열린 콩 대에서 그렇게 찾아오고 있다. 곧 화려한 단풍이 온 산을 뒤덮고, 이내 그 옷을 벗으면 발가벗은 산하는 우리 마음을 겨울 추위보다 더 시리게 만든다. 한국인의 심성은 몇 천년을 그렇게 우리의 자연과 더불어왔다. 자연을 닮은 우리의 심성, 그 자연의 일부로 만든 우리의 도자기.

한 일본인이 우리 도자기의 맛에 반해 이를 배우고자 우리 도공 밑에서 수업을 받고, 자기 나라로 돌아가 수없이 작업을 하였지만 한국의 도자기와 같은 맛을 내지 못하고, 결국 술로 나날을 보내다 자결했다. 그것이 오늘 또다시 반복된다 해도 겉모습이야 비슷하게 만들겠지만 그 속맛은 모방될 수 없을 것이다. 우리의 가슴속에는 사라 질 수 없는 우리만의 유전정보가 각인되어 있기 때문이다.

과학적이고 합리적으로 그 아름다움을 분석한 것에 기초하여 만들어진 사발에서는 굳어진 형식미만이 남게된다. 우리의 사발은 아름다운 사발 한 개를 만들고자 해서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우리 조상들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쉬지 않고 물레 위에서 수백개의 사발을 찼다. 잠시의 잡념도 할 겨를없이,아름답게 만들고자하는 욕심 부릴 시간도 없이 의식할 수 없는 자연을 닮은 심성으로 빚고 또 빚었을 뿐이다.

마치 삼 천 배를 올린 후 바람이 자기 몸을 뚫고 지나가는 것 같은 느낌으로 자기자신 역시 자연의 일부임을 비로소 느낄 때의 일체감으로 빚었던 것이다.

우리 도자기의 아름다움은 도해될 수 없는 우리의 심성과 같은 것이다. 수없이 빚고 또 빚어 내 손끝과 흙이 하나되어 나오는 맛. 새댁의 어여쁜 손끝에서 나오는 화려한 맛이 아니라 할머니의 주름진 손끝에서 나오는 된장 같은 신묘한 맛. 이 가을 화려하게 치장한 옷을 벗고, 가슴 시리도록 애잔한 마음으로 우리 도자기의 참 맛을 느껴보는 여행을 떠나보자. 거기에 잊혀져 가고 있던 참 내(우리)가 있기에.

이복규(대구공업대 교수·도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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