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정명희(대구의료원 소아과장)

10월의 새벽공기는 유난히 상쾌하다. 느슨해진 기분을 다잡아 상쾌한 아침을 열듯 창문을 활짝 열고는 머리가 맑아지기를 기다리며 간밤에 식구들이 모여앉아 놀았던 의자를 들어 제자리에 옮기려는 순간이었다. 허리에 찌르는듯한 통증이 오면서 온갖 신경이 덩어리되어 흘러내리는 느낌에 그 자리에 주저앉아 버렸다.

왠일일까? 갑자기 얼마전에 본 '의사'라는 영화가 떠오르며 더럭 겁이 났다. 낙천적이며 수술을 잘 하는 외과의사인 주인공이 어느날 목에 이상이 있어 가보니 후두암이었다. 환자도 치료해야 하고 쌓여있는 업무도 처리해야 하고,주인공은 마음이 급해졌다. 그 역시 환자로서 빨리 치료받고 낫기를 원하지만 병원의 시스템도 그렇고 동료의사들 역시 한 환자로만 취급하는 바람에 주인공이 느끼는 마음의 갈등과 환자에의 연민을 그린 영화였다. 마지막이 압권이었다. 회진 시간에 자기 제자들을 모두 입원시켜 환자로서의 심정을 경험하게 해보는 것이었다.

나는 그 영화의 주인공처럼 겁에 질려 한참을 멍하니 있다가 천천히 일어나니 역시 허리에 심한 통증이 왔다. 죽을것처럼 소리를 질렀다. 식구들이 잠도 덜 깬 채 달려나왔다. 너무 겁이 났다. 누군가가 옆에 있어야 될 것 같았다. 통증이 매우 심했지만 환자들 때문에 병원엘 겨우겨우 갔다. 앉아서 구부리지도 못한 채 뻣뻣하게 괴로운 표정으로 환자를 진찰하니 아픈 아이 치료받으러 온 엄마들이 저마다 비방을 소개해준다. 어떤 이는 "의사선생님도 다 아픕니까?"하며 의아해 한다. 아픈 곳에 통증이 덜 가게 안 움직이려니 어깨도 아프고 머리도 아프고 그보다 지금껏 건강을 자신했던 내 마음이 너무 무거웠다.

이곳 저곳 진찰을 받아도 한결같이 누워서 안정을 취하며 경과를 두고 봐야 한다는 것이다. 무리하면 안되며, 꽤 오래 갈 수도 있다고 했다. 누워서 쉴 수 없는 형편인 나 자신에게 화가 나서 동료 의사까지 은근히 야속하게 느껴졌다. 환자가 되면 신체의 병보다 마음이 정말 약해지는 걸 실감했다. 어차피 아픈 것은 시간이 가야 풀리는 것이니 안정을 취해야 한다는 진단은 틀린 데 없는 말이다.

"엎어진 김에 쉬어간다는 옛말이 있어. 너무 바삐 살아 제몸 돌볼 틈없이 지내니 건강에 신경쓰라는 주의신호다. 건강에 신경쓰면서 마음의 여유를 가져라"는 친정어머니의 말씀이 내게는 어느 누구의 처방보다도 마음에 와닿는다. 그동안 환자의 마음을 충분히 체험했기 때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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