잎이 떨어지고 앙증맞은 열매로 남은 산수유의 빨간 빛깔이 늦은 오후의 햇살을 받아 너무 곱다. 봄날,노오랗게 터지듯 피어나는 꽃망울과 더불어 은은한 향기를 지닌 산수유꽃은 생전의 아버지께서 너무나 좋아하셨던 터라 산비탈을 지키고 서있는 열매맺은 산수유를 더이상 보여드리지 못하는 것이 안타깝다.
돌아가신지 얼마되지 않아 "아버지"란 말만 들어도 눈물이 나던 지난 봄, 이른 출근길에 아버지와 비슷한 노인을 모시고 황급히 병원을 찾는 분이 있었다. 바로 아들애의 학교에 계시다 봄에 전근가신 선생님이었다. 그분의 부친 역시 말기암으로 고생하고 계셨는데 백방으로의 노력도 소용없이 세상을 뜨시고 말았다. 내 아버지를 본듯해 마음이 몹시 안타까웠다. 아버지들의 존재는 과연 무엇인가? 서서히 배어나던 선생님의 굵은 눈물방울을 보며 아버지들의 존재가 이루 말할 수 없이 큼을 다시 한번 느꼈다.
얼마전 유품을 정리하다 본 아버지의 수첩에 적힌 글귀가 다시 한번 나를 울린다. '새해 첫날,이른 아침 세수를 하면서 먹은 첫 마음으로 일년을 살아간다면, 학교에 입학하고 빳빳한 새 책장을 넘기며 일과표 짜던 영롱한 첫 마음으로 공부를 한다면, 하얀 병실에 입원해 있다 퇴원하던 날의 감사한 마음으로 자신의 몸을 돌본다면, 사랑하는 연인을 처음 만날때 콩닥거리던 가슴의 불길 꺼지지 않는다면, 그 사람은 언제나 높이와 깊이, 넓이와 크기의 각 그릇을 씻고 닦는 항상 첫 마음을 잃지 않으리'
새 천년 벽두, 수첩에 기록해둘만큼 좋은 글귀였다고 생각하셨는지 몇 번이나 '첫 마음'에 색칠을 해두신 것은 아버지께서 내가 흔들릴때마다 읽어보라고 주시는 유언인 것만 같아 더욱 가슴이 아프다.
큰 변화가 있을 것 같이 생각되던 새 천년도 내일이면 11월이다. 연속되는 시간 속에 나름대로 몇 개씩의 마디를 만들어서 늘 새로워지고자 하는 인간의 지혜에 감사하며 아버지가 주신 '첫 마음'으로 살아가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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