덜 먹여 열량을 제한하면 양껏 먹는 쪽 보다 수명이 50~100% 늘어난다는 것은 곤충이나 생쥐 실험에서 여러차례 증명됐었다. 그러나 미 국립 노화연구소는 1987년부터 색다른 실험을 진행하고 있다. 영장류인 원숭이 200마리를 대상으로 한 칼로리 제한(caloric reatriction) 실험이 그것. 이는 닮은 점이 많은 원숭이 연구를 통해 소식(小食)이 인간의 수명도 연장시키고 각종 질병을 줄이는지를 알아보기 위한 것이다.
◇적게 먹은 원숭이가 건강하다
물론 원숭이는 수명이 비교적 길어 연구가 최종 결론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20~30년이 더 걸릴 참. 하지만 실험 13년만의 잠정 결론은 "소식은 역시 노화를 막아주고 병을 예방한다"는 것이다.
연구에서 섭취 칼로리를 30% 줄인 원숭이군에서는 신진대사율이 떨어졌고 그 결과 체온도 낮아졌다. 당뇨병 같은 성인병의 원인이 되는 인슐린 수치와 혈압은 낮은 반면, 혈관 탄력도는 더 높았다. 동맥경화의 주범인 저밀도지단백과 중성지방 등의 혈중 수치가 낮은 반면, 몸에 좋은 고밀도지단백은 높은 수치를 기록했다.
더 놀라운 것은, 소식한 원숭이들에게선 DHEA 감소 속도가 느렸다는 점이다. DHEA는 면역기능을 향상시키고 암 동맥경화증 골다공증 등의 발생을 줄이며 콜레스테롤을 감소시키는 장수호르몬. 70대가 되면 20대의 10~20%만 남게 된다.
지금까지의 실험만으로도, 소식한 원숭이는 실컷 먹는 원숭이 보다 당뇨병·동맥경화 같은 노화질환 및 암 발생률이 낮고, 젊음을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소식하면 유해산소가 감소한다
소식이 원숭이에게만 효과가 있는 것은 아니다. 세계 각국에서 실시한 장수촌에 대한 조사에서도 비슷한 결과가 나오고 있는 것. 소식한 집단은 그러잖은 집단에 비해 콜레스테롤 수치가 낮은 것은 물론, 혈당과 인슐린 수치도 안정돼 있었다고 한다.
소식하는 사람들이 젊음을 유지하고 장수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과학자들은 유해산소 발생에서 그 해답을 찾는다. 우리가 먹은 음식물이 에너지원으로 사용되는 대사과정에서는 불가피하게 유해산소가 발생한다. 이 유해산소가 세포를 늙게 만들고 암을 유발한다.
소식을 하면 불필요한 대사 과정이 줄어 유해산소의 발생이 억제된다. 음식물 섭취를 줄이면 당이나 단백질 대사 효소에도 영향을 줘 노화를 늦추고 질병을 예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줄여 먹을 양은 30%
소식이라고 해서 무조건 적게 먹는 것을 권하는 것은 아니다. 극단적인 방법으로 단식을 하거나, 하루 한끼 또는 두끼로 줄이는 것은 결코 도움이 안된다.
어떤 것이 바람직한 소식일까?
첫째, 하루 세끼를 다 찾아 먹으면서 마음껏 먹는 양의 30% 정도를 덜 먹는 것이 장수 소식 방법이다. 둘째, 신선한 야채를 포함해 여러가지 음식을 골고루 먹어야 한다. 우리가 먹는 음식에는 지나치게 지방이 많다. 또 정제물과 식품첨가물이 많아서 칼로리는 과다한 반면 꼭 필요한 비타민이나 미네랄은 부족하다.
이를 종합하면, 여러가지 신선한 음식을 골고루 먹되, 양은 부족한 듯 먹는 것이 건강장수 식사법의 요체가 되는 셈.
우리나라 사람들은 손님을 청해 음식을 대접할 때 관습적으로 "많이 드세요"라고 권한다. 제대로 먹지 못하던 시절엔 많이 먹게 하는 것이 미덕일 수 있었을 터. 하지만 과학적인 건강 장수법에 비춰보면 이제 이 인사말은 "빨리 늙어라"는 말이 될 수도 있다.
이제부터라도 "맛있게 골고루 드세요"라고 인사말을 바꾸는 것이 어떨까?
계명의대 가정의학과 dhkim@dsmc.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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