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청와대 직원비리 늦은 대처

청와대는 10일 위생직 직원 이윤규(36.8급) 씨의'정현준 게이트' 연루 사실이 드러나자 파문확산을 우려, 비서실 기강확립 대책을 서둘러 발표하는 등 비위척결에 신속한 움직임을 보였다.

비록 청소를 담당하는 하급 공무원이긴 해도 청와대에 몸담고 있던 직원의 비리연루를 계기로 '청소원이 몇억을 받았으면 고위층은 도대체 얼마를 받았겠느냐'는 국민들의 따가운 시선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한광옥(韓光玉) 청와대 비서실장이 이번 사건을 계기로 비서실의 복무기강을 확립하고 자체 기강점검을 강화하기로 한 것도 사건의 파장을 최소화하고 불미스런 사건의 재발을 막기 위한 고육지책으로 풀이된다.

특히 한 실장과 신광옥(辛光玉) 민정수석이 이례적으로 기자 간담회를 갖고 4급이하 직원의 자진 재산공개 유도, 주식투자 등 재산증식과 관련된 PC 접속의 사실상금지 등 복무기강 방안을 밝힌 것은 청와대가 이번 사건을 얼마나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는지를 읽을 수 있게 하는 대목이다.

한 고위 관계자는 "남북 화해무드 조성과 노벨 평화상 수상이라는 김 대통령의 업적이 일부 직원들의 부주의와 일탈로 빛이 바래가고 있다"고 개탄했다.

신 수석에 따르면 이씨는 지난 89년 노태우(盧泰愚) 전 대통령 재직시 채용됐으며, 경남 거창이 고향이어서 고향친구를 통해 98년 부산 출신인 정현준 한국디지탈라인 사장을 소개받았다는 것이다.

그는 정 사장에게 청와대 과장이라고 사칭한 뒤 여러 차례 만난 것으로 알려졌으며 지난해 코스닥 열풍이 불면서 정 사장이 이씨에게 투자를 권유해 친척들의 돈을 모아 펀드에 가입하게 됐고, 펀드가 깨지면서 친척들의 원금상환 요구에 시달리다 정 사장에게 변제를 요구했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정 사장은 이씨에게 '경찰청 수사과의 대신금고 수사를 무마시켜달라'는 청탁을 했으며 이씨는 청와대 수석비서관을 소개시켜 주겠다는 등 자신의 위세를 과시하기도 했다고 신 수석은 전했다.

청와대는 그러나 구체적인 투자액 및 이씨가 정 사장으로부터 받은 돈의 액수에 대해서는 "검찰 수사에서 밝혀질 것"이라며 함구했다.

한 고위 관계자는 "청소원이 뇌물을 받는다는 것은 소가 웃을 일"이라면서 "오히려 청소원을 '과장'으로 믿은 정현준이 사기피해자이며, 이 사건은 단순 사기 또는 변호사법 위반 사건일 뿐"이라고 말했다.

청와대측은 또 모 언론을 통해 이 사건 관련자의 전화번호가 공개된 뒤 곧바로 자체진상조사에 들어가 이씨로부터 사건 일체를 자백받고 9일 오후 검찰에 신병을 인계했다면서 자체적으로 이 사건이 걸러진 것임을 강조했다.

그러나 청와대는 최근 한빛은행 불법대출 사건에 전 해외언론 행정관 박현룡씨가 거명된데 이어 지난달에는 파견 직원이긴 하지만 전 민정비서실 행정관 김상원씨가 포항제철 납품로비 의혹사건으로 구속되는 등 불미스런 사건이 잇따르자 난감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한 관계자는 "청와대 직원이라면 대단한 것으로 비쳐지는 시각도 문제"라면서 "과거 정권에서 '권부'로 인식돼 일반인들에게는 무엇이든 다 할 수 있는 것 처럼 인식되고 있는 잘못"이라며 청와대에 쏠리는 무거운 시선에 불편함을 토로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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