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일은 다섯번째 맞는 농업인의 날. 한자 10(十)에다 1(一)을 덧붙이면 농사를 상징하는 흙토(土)가 된다해 11월 11일로 정했다. 올해도 변함없이 농민들의 사기를 올리는 다채로운 행사가 전국에서 마련됐다.
수확의 기쁨속에 반갑게 맞아야 할 이날, 그러나 농심은 수심으로 가득찼다. 뭣하나 제값받고 판 것이 없는 한해였기 때문이다. 사과, 배, 방울토마토 등 과채류값은 미국 산 오렌지·바나나 등의 수입 급증으로 폭락세를 면치 못했고 마늘도 중국산으로 홍역을 치렀다. 잎담배 농가도 담배사업법 개정으로 담배인삼공사의 잎담배 제조 독점권이 폐지됨에 따라 수입산 잎담배의 위협앞에 풍전등화다.
축산농가들도 어렵기는 마찬가지. 100kg기준 돼지값이 11일 현재 생산가격에도 5만원가량 모자라는 10만원선으로 떨어져 자금난을 견디지 못한 영세 사육농가가 도산하고 있고 소 사육농가는 내년 소고기 수입 시장 완전 개방에 따른 불안감으로 동요하고 있다.
또 시설원예농가는 한껏 치솟은 기름값 때문에 상대적으로 기름을 덜 때도 되는 저온 작물을 택해 몰리면서 상당수 작물에서 공급과잉에 따른 파동이 예상되고 있는 실정이다.
WTO체제에 돌입하면서 정부수매가 매년 줄어들고 있는 쌀농사도 지을지, 말아야 할지 선택에 내몰리는 농가가 늘어나고 있다.
이에 따라 지난해 가구당 1천853만5천원(99년 통계청 농가경제조사 현황)이던 농가부채가 올해엔 크게 늘어날 것이란 게 농업전문가들의 일반적 분석이다. IMF가 한창이던 지난 98년, 농가부채 증가율은 전년도에 비해 무려 30.8% 증가했었다. 올해도 그에 못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대세다.
실제 농촌지역 돈가뭄으로 금융기관에서 논·밭을 담보로 얻어 쓴 빚을 갚지 못해 농경지가 대량 경매처분되고 있어 파산농이 늘고 있다. 경주시 율동 이모(60)씨 경우 논 210평을 농협에 담보하고 1천만원을 대출받았다가 연체, 농협측이 경매신청을 의뢰해 겨우 200만원에 낙찰돼 빚도 제대로 가리지 못한채 논만 날렸다. 건천농협의 경우 일반대출 700건중 80%가 농지를 담보로 대출내 줘 이중 20여건이 부채상환이 안돼 경매처분하고 있다. 상주시 농협도 연체가 쌓인 농경지를 경매처분하거나 경매예정된 물건이 100여건, 청송농협의 경우 경매에 부친 30여건에다 앞으로 경매처분 대상이 수백여건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더욱 심각한 것은 올 연말이다. 각종 영농자금 상환을 앞두고 있기 때문. 농협 상주시지부 관내 12개 농협은 연말인 다음달까지 일반 영농자금 300억원과 농업경영종합자금 80억원 등 총 380억원을 농가들로부터 상환받을 계획이다. 농협 칠곡군지부도 산하 7개 농협 단기 농사자금 111억원을 연말까지 회수한다는 목표다.
논·밭을 잃고 떠돌 농가들이 더더욱 늘어날 것이다. 상주시 사벌면에서 배농사를 짓는 정모(58)씨는 "벌써부터 연말 자금 상환 걱정에 일손이 제대로 잡히지 않는다"며 한숨지었다.
지난달 30일 20개 전국 농민단체가 모여, 제정시점 기준으로 연체이자를 전액 탕감하고 모든 연대보증을 농업신용보증기금으로 대체하되 연대보증으로 인한 채무는 정부에서 해결하는 등의 내용을 담은 '농가부채 경감을 위한 특별법'을 국회에 입법 청원하고 나선 것은 농가부채가 그만큼 심각한 지경에 이르렀음을 방증하는 것. 이들은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 단체 행동도 불사할 것이라고 비장함을 보였다.
농심을 무엇보다 절망케 하는 것은 내년 농사 환경도 올해와 별 달라질 것이 없을 것이란 우려때문이다. 수입소고기 전면개방, 한·칠레자유무역협정체결 등이 예정된 내년엔 수입농축산물의 위협이 더 날카로워 질 것이다. 농가부채도 당초 정부가 올해 약속했던 집행분의 51% 실적에 그치는데서 엿보이듯 내년에도 시원함을 주지 못할 것이다. 직접 보조가 금지된 WTO체제하에서 그나마 규제를 피하면서도 가격지지 성격을 띠는 내년 논농업직불제 도입도 당국이 쌀 농가의 기대치인 1ha(진흥지역)에 50만원 보조에 턱없이 못미치는 25만원으로 결정, 실망감만 던져 주었다.
가시밭길만 보이는 농업인의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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