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홍경호 세상읽기-문혁(文革)

몇 년 전, 중국의 모 대학 교수와 저녁 회식을 하게 되었다. 인문학 분야를 전공하는 교수라 하므로 평소 중국 역사에 대해서 궁금하게 여기던 것들을 물어볼 좋은 기회라 여겨서 상당한 기대를 갖고 그 자리에 나갔다. 그러나 결과는 실망과 허탈이었다.

불행하게도 그 사람은 자기 나라의 옛 역사에 대해서는 거의 백지상태였다.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어 했더니 그는 무척 당황해 하면서 그 까닭을 설명해 주었다. 중국 대륙을 할퀴고 간 문화혁명과 공산주의가 그 주범이었다. 그것이 그 나라의 역사나 전통은 물론이고 국민의 머리통까지 빈 껍질로 만들어버린 것이었다.

황하의 대홍수 같은 이 혁명이 지나간 자리에는 암흑과 무지(無知)만이 남았다. 중국이 오늘날 정신적인 창조 작업에서는 아예 손을 떼고 물질과 과학에만 열을 올리는 이유도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그 길 밖에는 당장 살 길이 없기 때문이지만 후세 사가들은 틀림없이 중국의 이 시기를 암흑의 시대로 기록할 것이다.지금 우리는 중국이 겪었던 비극보다 더 혹독한 문혁을 겪고 있다. 역대정권은 국민을 바보로 만드는 교육정책으로 이를 부추겼다. 정부가 앞장서서 국민의 머리를 아래로 끌어내려 평준화하는데 열을 올리더니 결국은 우민화(愚民化)하는데 성공했다. 대학입학 수능시험, 실용만 앞세우는 실용주의 교육, 무엇이든 한가지만 잘 하면 된다는 일인일기교육, 전 국민을 인터넷 속으로 집어넣겠다는 정보화 교육, 그 어느 한가지도 우리의 지적 수준을 위로 끌어올리는 노력과는 거리가 멀다. 버스에서 지하철에서 책을 읽는 젊은이들이 있는가, 없다. 책을 사달라고 조르는 어린이가 있는가, 없다. 등불 밑에서 조용히 앉아 책을 읽고 명상하는 어른을 보았는가, 못 보았다. 이제 책의 시대는 지나가고 머지않아서 책을 찍어내는 출판사도 자취를 감출 것이다.

남녀노소가 노래에 미쳐서 날뛰고 있다. 셋만 모이면 노래방이요 고스톱이요 돈타령이고 TV 앞에서 낄낄거리며 자기를 잃어가고 있다. 철저하게 황폐화되어 정신은 오간 데 없고 육체와 물질만의 끔찍한 혼돈의 역사가 이렇게 해서 시작된다.

대학의 현실은 더욱 비참하다. 도저히 강의를 들을 수 없는, 들어도 이해못할 학생들이 머리를 알록달록 염색한 채 핸드폰으로 낄낄거리며 들락거리고 교수들은 망연자실 어찌할 바를 모르고 한숨만 쉴 뿐이다.

전공(專攻)이란 것을 없애라, 과(科)를 없애라, 학생들이 원하지 않는 강의를 해서는 안 되고 원하는 교과목만 개설하라. 교과목에서 논(論), 문학, 문화, 개론, 학(學) 따위의 단어는 빼라. 학생 선발을 위해서는 여하한 형태의 필기시험도 치러서는 안 된다. 국민을 사교육비(私敎育費)의 질곡으로부터 해방시킨다는 억지발상과 논리에서 출발한 평준화 교육이 이런 결과를 낳게 했다. 그렇다고 사교육이 없어졌는가, 더 극성이다.

이런 판국에 대학은 다시 몇 달의 족집게 과외만 받으면 만점을 받을 수 있는 수능시험을 거치고 입학한 학생들을 맞아들이게 되었다. 이쯤 되면 교수는 교수가 아니라 탁아소 보모나 보부로 불러야 마땅할 판국이다.

게다가 학문의 편중과 편식은 더욱 심해간다. 대학마다 인문학부 학생 가운데 90%이상이 과 배정에서 영문과를 지원했고, 영문과를 제외한 국문과, 사학과, 철학과, 독문과, 불문과, 중문과 등등에는 두어 명 정도가 아니면 아예 한 명의 지원자도 없다. 이것이 정부가 추진하는 학문의 국제화이다. 편식(偏食)도 이쯤 되면 생명을 잃는다.

한양대 교수·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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