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미지의 섬 주제 사라마구 지음

'한 남자가 왕궁에 와서 청원의 문을 두드렸다. 왕을 직접 배알하겠다는 그의 고집에 왕은 마지못해 모습을 드러낸다. 그 남자는 미지의 섬을 찾아가고자 하니 배를 달라고 청한다. 왕은 미지의 섬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며 그의 청원을 묵살하려하나 상황에 떠밀려 그에게 배를 주게 된다. 한편 왕궁의 청소부 여인이 그와 동행하겠다고 우기는데…'

포르투갈 출신으로는 최초로 노벨문학상(98년)을 수상한 주제 사라마구의 짧지만 깊은 의미가 담긴 소설 '미지의 섬'(강주헌 옮김·큰나무 펴냄)이 우리말로 번역돼 나왔다.

1997년에 발표된 이 소설은 미지의 섬을 찾아 떠나려는 한 남자의 이야기다. 청원의 문을 두드려 왕에게 한 척의 배를 구한 남자는 그 누구도 있을 것이라고 믿지 않는, 발견되지 않는 섬을 찾아 항해를 시작하려 한다. 모두가 헛된 꿈이라고 일축하지만 한 여인은 그 남자를 믿는다. 남자의 눈빛을 통해 일상적인 현실에서 꿈을 찾아 결정의 문을 나왔던 여인은 약해지는 남자의 꿈을 실현시켜 주는 힘이 된다는 줄거리다.

작가는 이 이야기를 통해 현실 사회의 모순을 꼬집는다. 모든 권력이 집중된 왕에게 배를 요구하는 장면에서는 민생의 문제는 뒷전에 둔 관료사회의 전형적인 모습이 등장한다. '저렇게 문을 두들겨대는데도 대답하지 않는 왕은 대체 어떤 사람일까?라고 투덜대는 여론에 못이겨 왕은 일등비서에게 청원자가 무엇을 원하는지 알아보도록 시켰다. 일등비서는 이등비서를 불렀고, 이등비서는 삼등비서를 불렀고, 삼등비서는 일등보좌관에게 똑같은 명령을 전했다. 일등보좌관은 이등보좌관에게 명령을 전달했고, 이런 식으로 명령이 하달되어 결국에는 청소부 여인에게까지 내려 갔다. 청소부 여인은 명령을 떠넘길 아랫사람이 없었기 때문에 문을 살며시 열고 그 틈으로 물었다. 무슨 일이요?'

이렇듯 궁지에 몰린 상황에서도 마지막까지 자신의 이익을 꾀하고 책임을 회피하려는 인간의 간교함도 빠지지 않는다. 그런 상황에서도 남자는 배를 요구한다. 당당하게.

사라마구의 작품에는 '미지'라는 단어가 자주 등장한다. 같은 해 발표된 소설 '모든 이름들'에도 미지의 여인을 찾아 헤매는 등기소 말단 직원 '쥬제'라는 한 남자의 이야기가 나온다. 작가에게 '미지'의 개념은 무엇일까? 꿈은 그것을 이루어 나가는 노력에서 진정한 실현의 기쁨과 희망을 발견할 수 있다는 작가의 메시지인지도 모른다. 보이지 않는다고해서 너무도 쉽게 단념해 버리는 우리의 관념에 경종을 울리는 작가의 경고다.

이미 국내에 소개된 사라마구의 작품은 '수도원의 비망록' '눈먼 자들의 도시' '모든 이름들' 등이다. 대부분의 그의 작품은 대화문과 서술문을 구별하지 않는 문장 형식, 쉼표와 마침표를 제외한 모든 문장부호의 생략, 호흡이 길어 독자들이 손을 대기 힘들었다. 하지만 '미지의 섬'은 다른 작품과 달리 난해하지도 않고 마치 어른을 위한 생각하는 동화로 가슴에 남아 있는 여운이 진한 작품이다. '미지의 섬'에서 "폭넓은 상상력과 따뜻한 시선, 아이러니가 풍부한 우화적인 작품으로 허구적 현실의 묘미를 맛보게 해주었다"는 스웨덴 한림원의 노벨문학상 선정이유를 독자들은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다.

서종철기자 kyo425@imaeil.com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