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electron)의 'e'만 앞에 붙이면 뭐든 첨단이 되는 세상이다. e메일로 시작해서 e비즈니스, e뱅킹은 물론 전자서적을 뜻하는 e북까지 등장했다. 심지어 '전자종이'란 뜻의 e페이퍼와 e잉크란 말도 생겨났다. 말뿐이 아니다. 미국, 일본 등지에선 이미 시제품이 등장해 '종이없는 사회(paperless society)'를 예고하고 있다전자종이가 상용화된 미래 사회를 상상해보자. 도심 빌딩 벽면을 차지한 거대한 광고판에 시원한 음료수가 얼음 속에 채워져 있다. 순식간에 그림이 바뀌어 태양이 작열하는 사막 한가운데서 음료수를 마시는 장면이 나온다. 놀라운 것은 내용이 아니라 광고판이다. 마치 엄청나게 큰 종이 포스터 한 장을 붙여놓은 것처럼 얇다. 화질이 선명한데다 전력소비량은 일반 광고판의 10분의 1도 안된다. 전자종이로 만든 책은 어떨까. 사람들은 조그만 액정화면 대신에 팜탑 컴퓨터에 연결된 전자종이를 둘둘 말아 주머니에 넣고 다닌다. 팜탑으로 인터넷 e북을 연결하면 언제 어디서나 소설이나 잡지를 읽을 수 있다.
전자종이가 상용화되면 신문의 모습도 완전히 달라질 것이다. 전자종이로 만들어진 신문은 기존의 1회용 종이가 아니라 호주머니에 접어서 보관하는 휴대용TV와 비슷해진다. 인공위성을 통해 최신 뉴스를 전파로 쏘아보내면 '전자신문(e-Newspaper)'은 즉시 최신 내용을 표시하게 된다. 신문의 크기도 일반 다이어리보다 작아질 것이다.
디지털 파일형태로 서적과 잡지를 다운로드받는 e북 시대는 이미 우리 곁에 다가와 있다. 종이 출판계에 혁명을 가져올 e북은 서비스 형태에 따라 크게 3단계로 나뉜다. 인터넷을 통해 서적 파일을 내려받고 데스크탑, 노트북, PDA 등에 설치된 전용 소프트웨어를 통해 읽는 뷰어 방식이 초기 단계다. 다음으로 발전한 것이 전용 단말기를 이용하는 방식. 서적 크기의 전용 단말기에 최대 1000권 정도의 디지털 서적을 담아 언제 어디서든 읽어볼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이같은 단계의 e북은 국내외에서 상용화된 것들이다.
마지막 단계가 바로 e페이퍼, 즉 전자종이를 이용하는 방식이다. 전기장에 노출되면 색이 변하는 인공지능 소재를 얇은 플라스틱 판사이에 넣어 화면을 만들어낸다. 전자종이의 핵심은 전기장에 따라 색이 변하는 전자잉크다. 미국에선 'E-잉크'사가 지난해 5월 전자종이 시제품을 만들어 광고판으로 활용할 수 있는지에 대해 시험을 하고 있다. 이밖에 제록스, 캠브리지시스템스, 켄트디스플레이 등이 개발에 열을 올리고 있다.
전자 잉크는 말 그대로 문서를 인쇄할 때 사용하는 잉크처럼 아주 얇은 막으로 만들어 어떤 면에나 입힐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종이처럼 가볍고 얇아 구부리거나 접을 수 있고 어느 방향에서 보든지 선명한 특징이 있다. 전력 소모도 처음 그림이나 글자를 입력할 때 미세한 전력이 필요할 뿐 내용을 다시 바꿀 때까지는 전원이 전혀 필요없다.
루슨트테크놀로지와 E-잉크는 플라스틱시트 모양의 전자종이를 공동 개발하기로 했다고 지난해 밝혔다. 값비싼 반도체칩 대신 플라스틱 트랜지스터를 사용해 종이 위에 잉크로 인쇄하는 방법과 비슷한 최초의 플라스틱 전자표시장치, 즉 전자종이를 만들 계획이다. 플라스틱 트랜지스터는 일반 반도체칩과 같은 특성을 지녔지만 유연성이 있고 인쇄가 가능하다. 수백만개의 마이크로캡슐로 이뤄진 전자잉크는 플라스틱 트랜지스터에 의해 전기장이 가해지면 다양한 색상과 이미지를 그려낼 수 있다. 지난해초 E-잉크가 선보인 최초의 전자잉크 표시장치인 '이미디어(Immedia)'는 반도체칩 부품을 사용하고 있다.
이밖에 일본 찌바대과 도시바도 독자적인 전자종이 시제품을 개발하는데 성공했다. 찌바대 공학부에서 개발한 전자종이는 투명한 막 사이에 흰색과 검은색 가루를 채워 넣은 두께 약 0.1mm의 표시매체. 불화탄소의 흰색 입자와 복사기 토너 등에 사용되는 검은색 입자를 투명전극 사이에 끼워넣은 것이다. 표시면의 막이 마이너스(-)가 되도록 전압을 넣으면 검은색 입자가 플러스(+)로 대전되면서 표시면에 달라붙어 검게 보인다. 반대 전압을 걸면 입자가 거꾸로 이동해 하얗게 보인다. 수십분의 1초 단위로 표시를 바꿀 수 있으며, 전기를 끊어도 입자가 직전 위치를 보전하기 때문에 표시가 바뀌지 않는다. 내구성을 높이면 접거나 구부릴 수 있어 휴대용 초경량 디스플레이로 활용 가능하다.
도시바는 작은 플라스틱 조각을 정전기 힘으로 움직여 이미지를 표시하는 장치를 개발했다. 플라스틱 조각은 매초 30회 움직일 수 있고, TV 동영상을 표시하는 것도 가능하다. 현재 흑백만 표시하지만 플라스틱 조각을 컬러 투명필름으로 바꾸면 다양한 색상을 나타내는 것도 가능하다. 화면 크기를 대형화하는 과제가 남아있다.
또 제록스와 3M이 합작해 전자종이 생산에 나서기로 했으며, IBM은 전자종이 기술을 응용한 일반 서적형태의 시제품을 이미 개발한 것으로 알려졌다. 아직 어느 업체가 선두라고 말하기도 힘든 상황이지만 전자종이의 패권을 거머쥔 업체는 향후 출판 및 디스플레이 시장에서 상당히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게 될 것만은 틀림없다
김수용기자 ksy@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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