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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년 DJ납치사건 무마위해 박 정권 일 총리에 4억엔 전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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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3년 8월 김대중 납치사건과 관련, 당시 박정희 대통령이 다나카 가쿠에이(田中角榮)일본총리에게 거액의 금품을 제공해 정치적 타결을 끌어냈다고 기무라 히로야스(木村博保.73)전 니가타(新潟)현의회 의원이 10일 간행된 문예춘추(文藝春秋) 2월호에 폭로했다.

그의 기고문에 의하면 김대중사건이 발생한 후 일본측은 한국측에 책임을 묻고 사건 발생이전의 상태로 돌리도록 요구하는 등 한일 관계가 극도로 악화됐다.

이 때(73년10월초) 이병희 당시 무임소장관이 니가타에 있는 자신을 찾아와 다나카총리와의 면담을 주선해주도록 요청했다는 것.

니가타현 일한친선협회 부회장이기도 했던 기무라씨는 아버지가 니가타현 가리와(刈羽)촌 촌장으로 있었을 당시 중의원선거에 출마한 28세의 다나카씨를 밀어 당선시킨 것 등을 인연으로 다나카씨와 절친한 관계를 유지해 왔다.

기무라씨는 이씨의 요청을 받아들여 총리 비서에게 전화, 일정을 잡고 하루전 도쿄로 올라가 호텔에서 묵었다.

다음날 아침 메지로다이(目白台) 다나카총리의 자택으로 떠나기 앞서 기무라씨는 이씨가 가져온 커다란 종이가방 2개를 보았다.

총리의 면담은 5분간 이루어졌다. 이씨는 "하나는 사모님께"라며 다나카총리에게 2개의 종이백을 내밀면서 박정희 대통령의 친서도 함께 전달했다.

다나카총리는 의자에서 일어나 "오히라군에게 한개 전해줘야겠구먼"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오히라는 당시 외상인 오히라 마사요시(大平正芳)로, 이씨가 말한 사모님은 오히라씨를 지칭한 것이었다.

김대중씨가 서울 자택 연금상태에서 벗어난 것은 그 수일후인 10월 26일께이었다. 그리고 11월2일 김종필 총리가 일본을 방문, 다나카총리를 만나 정식으로 김대중 사건을 사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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