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가 바뀌고서도 정치판의 몰골은 여전히 흉칙하기 짝이 없다. 영수회담이 끝나자마자 험한 말들이 오고가더니, 이번엔 안기부 돈 선거자금 횡령 사건으로 또다시 나라가 쑤셔놓은 벌집이다. 세계가 모두 변화하느라 여념이 없는데, 우리 정치는 끝없는 나락으로 곤두박질치고 있다.
먼저 야당이다. 집권당 시절 선거 때 안기부 돈을 선거자금으로 썼다면 이는 보통 문제가 아니다. 아무리 인기없는 DJ정부가 들춰냈다 하더라도 잘못은 잘못이다. 정략이니, 음모니, 야당 말살이니 하고 비켜가려는 것은 온당치 못하다. 설령 여당쪽에 정략적인 음모가 없지 않다 하더라도, 거액의 안기부 돈을 선거자금으로 가져다 썼다면 이는 용서받지 못할 반국가범죄다. 무조건 머리숙여 사죄해야 한다. 혈세를 내고 국가 안보를 맡겼다가 천억원이 넘는 돈을 횡령당한 국민의 분노를 야당은 들어야 한다. 조사도 받고 죄값에 따라 어떤 벌도 달게 받아야 한다. 또다시 방탄국회 뒤에 숨는 것은 안된다. 썩은 살을 도려내고 구태를 벗어야 야당도 다시 일어설 수 있다.
여당도 마찬가지다. 다른 당에 의원을 빌려주는 꼼수 정치로 새 해를 연 것은 누가 봐도 저질이다. 국민의 비난은 아랑곳하지 않고 며칠 지나지 않아 같은 짓을 또 하는 것은 안하무인의 막가파 정치다. 야당의 안기부돈 횡령 사건을 정략적으로 활용하려 한다면 그것 역시 용서받지 못할 공멸의 정치이다. 나라 돈을 횡령한 야당을 정죄하려면 그것은 철저하게 국가 개혁 차원에서 접근해 가야 한다. 나라를 살리는 개혁이려면 원칙대로 접근하고 다스려야 한다. 상대가 누군가를 가리고, 상황논리만을 쫓아서 오락가락한다면 차라리 칼을 안 씀만 못하다.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또 정략 차원에서 접근한다면 개혁도 잃고, 민심도 잃고, 다음의 개혁 명분도 잃게 된다.
난국에 빠진 나라를 건져 올려야 할 우리 정치이건만, 여전히 정도 정치와는 너무도 거리가 멀다. 21세기 새 시대가 던져주는 험난한 국가적 과제들을 헤쳐 나가야 할 우리 정치이건만, 여전히 비전 정치와는 너무도 거리가 멀다. 국민적 지혜와 에너지를 모아 쓰러진 국민경제와 서민가계를 살려야 할 우리 정치이건만, 여전히 큰 정치, 상생 정치와는 너무도 거리가 멀다. 연초부터 답답해지는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다. 나라의 앞날이 걱정되는 이유가 또한 거기에 있다.
하지만 냉철히 생각해 보면 그리 낙담만 하고 있을 일은 아니다. 언제 우리네 삶과 역사가 우리 정치 때문에 발전해 본 적이 있었는가? 언제 우리가 비전을 제시하며 정도를 걷는 큰 지도자를 가져본 적이 있었는가? 오히려 정치는 오랜 세월 동안 질곡이요, 족쇄이지 않았는가? 억압과 고통의 원천이 아니었던가? 권모술수와 배신, 검은 돈과 꼼수가 판치는 이전투구장이 아니었던가?
그렇게 생각하고 기대를 버리니, 한결 마음속 답답증이 가신다. 이제 수없이 속아온 저급 정치판과 저질 정치인들이 달라지기를 기대하기보다는, 국민의 힘으로 우리나라가 21세기 새 시대에 살아남는 지혜를 모아가야 할 것 같다. 소인배 지도자와 사이비 정치인들을 제쳐두고, 새 시대를 열어갈 국민 실천 프로그램을 생각해 보아야 할 것 같다. 꼼수와 도둑질에 능숙한, 최소한의 예의와 양심도 팽개친 저질 지도자들을 뽑은 어리석고 불행한 국민 자신의 업보가 아니겠는가?
홍덕률(대구대 교수·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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