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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아 아부지가 왔다'고 박종철씨 고문현장 첫 위령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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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정권 시절 경찰의 물고문으로 숨진 박종철(朴鐘哲.당시 서울대 언어학과 재학중)씨의 위령제가 14년만에 처음으로 '현장'에서 열렸다. 아들이 고문 끝에 숨진 바로 그 자리를 찾은 아버지의 눈에는 하염없는 눈물이 흘러내렸다.

12일(기일은 14일) 오전 서울 용산구 남영동 경찰청 보안분실(구 치안본부 대공분실) 509호. 고 박종철(朴鍾哲)군의 14주기 위령제가 박군의 아버지 박정기(朴正基)씨와 스님 3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고문의 현장'에 들어서자 아버지 박씨는 당시의 조사 테이블과 욕조.변기 등을 조용히 훑어보며 아들의 영정과 위패.촛불.향.국화 등을 조심스럽게 올려 놓으면서 지그시 눈을 감았다.

두 손에 염주를 꼭 쥔채 스님들의 목탁소리만을 조용히 듣고 있던 박씨는 위령제가 끝나면서 '고밀양춘삼박종철영가(故密陽春三朴鍾哲靈駕)'라고 적힌 위패가 불에 타 재로 흩어지자 눈가에 기어이 눈물이 고였다. "이제야 너를 조금이나마 편히 보낼 수 있을 것 같다"국화 한 송이를 영정에 놓으며 박씨는 참았던 울음을 터뜨렸다.

위령제를 마친 뒤 박씨는 "이 자리에 오니 '종철이가 살아 있었으면...'하는 생각이 더욱 간절해집니다" 위령제를 마친 박씨는 "종철이의 아버지로서 아들이 죽음으로 지킨 양심과 지조를 본받는 것에 여생을 바치겠다"며 "'보안분실 509호'를 인권교육의 산 현장으로 계속 보존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박씨는 "여건이 허락되는 한 매년 기일 이곳 현장을 찾아 위령제를 가졌으면 좋겠다"는 뜻을 밝혔으나, 박군의 어머니 정차순씨(69)는 "아들이 고통 속에 죽어간 현장을 차마 보지 못하겠다"며 이날 위령제에 참석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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