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안기부 돈 검찰 조사

김기섭 전 안기부 운영차장이 지난 93년 안기부에 들어간 이래 매월 수십억원의 안기부 돈을 빼내 비자금을 조성, 대부분 선거자금 등의 명목으로 구 여권에 제공한 것으로 밝혀지면서 비자금의 전체 규모와 정확한 용처를 둘러싸고 각종 관측이 나돌고 있다.

최근 검찰에 소환, 조사를 받은 전 안기부 예산 담당 직원들은 김씨가 93년부터 안기부 예산을 수시로 빼내올 것을 요구, 매월 수십억원 단위의 국고수표를 끊어 김씨에게 전달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들은 그러나 정확한 용처는 김씨가 얘기해 주지도 않았고 알려고 하지도 않았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김씨는 국고수표를 받으면 안기부가 관리하는 유령업체 명의의 차명계좌와 개인적으로 개설한 수십개의 차명계좌를 이용, '돈세탁'을 하면서 비자금을 관리해온 것으로 드러났다.

검찰은 일단 김씨가 이런 방법으로 조성한 비자금이 매년 300억~400억원에 달하고 이 돈중 95년 안기부 예산에서 빼낸 940억원은 전액 구 여당에 96년 15대 총선자금 명목으로 건네진 사실을 자금추적 결과를 통해 확인했다고 밝혔다.

지금까지 검찰이 밝혀낸 4.11총선과 6.27지방선거 자금 총액이 1천192억원인 점에 비춰 수백억원 가량의 용처가 분명치 않은 것이다.

검찰과 정치권 주변에서는 김씨가 조성한 비자금의 용처는 당시 김영삼 대통령이 "기업인들로부터 한푼의 정치자금도 받지않겠다"고 선언, 실천하고 있는 상황과 연관해 추정해볼 때 필요한 때마다 또는 정기적으로 구 여권에 정치자금 또는 다른 목적으로 건네줬을 공산이 큰 것으로 보고 있다.

정권 출범후 자금 수요가 큰데도 불구하고 청와대가 기업돈을 일절 받지 않는 상황에서 김씨가 조성한 비자금이 그 역할을 대신했을 것이라는 점 때문이다.

이에 대해 검찰 수사관계자는 "지금까지 김씨가 선거자금으로 지원한 1천192억원외에 별도의 비자금이나 정치자금은 밝혀진 바 없다"고 잘라 말했다.

이 관계자는 또 "당시 안기부 회계장부상에도 구체적인 지출 명목이나 사용처가 나오지 않고 있어 더 이상 비자금 존재를 확인하기는 어렵다"고 설명했다.

김기섭 전 차장도 "당시 안기부자금은 내 판단에 따라 누구의 지시나 명령없이 내가 조성, 관리한 것이며 그 돈은 모두 선거자금에 썼다. 밝혀진 것외에 더이상의 안기부 돈은 없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김씨가 정권초기인 93년 안기부에 들어가 거액의 비자금을 조성, 관리한 것은 '상부'의 지시나 공모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라는 점에서 비자금 조성이 조직적으로 이뤄졌을 공산이 큰 것으로 검찰은 보고있다.

이와 함께 비자금 규모도 현재 드러난 것보다 훨씬 클 것이라는 분석이 우세하다.이를 위해 안기부 예산 중 명목이 불투명한 예비비가 일반 회계 예산에 비해 2배 가까이 많은 현실을 감안, 검찰이 각 부처 예비비에서 빼낸 비자금의 실체를 보다 명확히 규명해 내야 한다는 의견이 대두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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