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문화현장-대산포럼

◈미술토론 열기 가득 새로운 문화운동 지평'수인(囚人)의 공간'

건축가가 자신이 지은 건축 공간을 이렇게 부른다면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지난 11일 오후 4시, 경주시 외동읍 신계리의 한 별장에서 열린 제4회 '대산 포럼'. 이 날의 발표자인 건축가 이현재(54)씨는 30여명의 참가작가들에게 신계리 별장에 대해 설명하면서 '수인의 공간'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부산의 한 화랑주가 소유주인 신계리 별장은 폭 4m,길이 18m 높이 5m의 건물. 바깥에는 3m80cm의 높은 담장이 둘러처져 있고 내부로 들어가면 천장이 높은 거실과 내부 계단을 두어 2층 방으로 연결된다. 내부는 흰 색으로만 이뤄져 있고, 거실 안벽은 Im70cm 높이의 통유리로 돼있어 바닥이 나무로 된 바깥 정원을 내다볼 수 있다. 그러나 높은 담장으로 인해 집 밖의 풍경은 거의 보이지 않고 담장과 건물의 선이 만든 직사각형의 공간 사이로 하늘이 보일 뿐이다.

이렇듯 외부와 차단된 건물을 이씨는 '수인의 공간'으로, 거실에 앉아 유리 너머 담장벽을 마주 대한 상태를 '면벽(面壁)'의 개념으로 규정했다. 다만 수직적 구조로만 이뤄져 자칫 삭막하게 여겨질 수 있는 건물을 거실 안벽의 통유리가 숨통을 틔워주고 정원 한 켠에 심어진 나무 한 그루도 같은 역할을 한다.

이 날의 주제는 화가 출신 건축가인 이씨의 '건축 미학'. 자신의 건축 작품 소개가 끝나자 작가들의 활발한 토론이 이어졌다. 작가 김선혜, 김호득씨 등은 "참선을 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듦으로써 한국적 의식을 끌어들였다"고 평가했고, 참가자들은 높은 담장과 묵직한 건물 사이의 좁은 공간이 만들어내는 평면과 순간의 미- 비오는 날 콘크리트 담장에 빗물이 번져갈 때의 회화적 변화, 좁은 하늘 사이로 새가 휙 지나갈 때의 시각적 충격 등-에 대해 공감했다. 그러나 이 건물이 "'나' 만을 생각할 뿐 '우리'라는 개념은 없다. 주위의 농촌 마을과 조화를 고려해 볼 수도 있지 않느냐"는 한 참가자의 지적에 이씨는 "정상적인 것과 비정상적인 것이 공존하는 것이 세상"이라고 대답했다.

'대산 포럼'은 청도의 대산초등 폐교에 작업실을 갖고 있는 작가들을 중심으로 열리는 '미술 토론모임'을 말한다. 현대미술 작가 최병소 김호득 김영진 백미혜 이영배 이현재 김선혜 남춘모, 시공갤러리 디렉터 이태씨 등 9명이 정회원. 지난해 9월부터 지금까지 네 차례의 포럼을 통해 '이영배의 숯 작품' '최병소의 모노크롬에 제시된 지각된 사건으로서의 세계', '수묵화가 김호득의 대구시대, 그 예술사적 사건들' 등을 주제로 다루었다.

'대산 포럼'은 처음 몇몇 작가들이 서로의 작품에 대해 이야기해보자는 취지에서 시작된 이후 젊은 작가들과 미술대 대학원생들로부터 폭넓은 호응을 받고 있다. 토론을 통해 각자의 작품에 나타나는 주제의식이나 감성을 교류하는가 하면 때론 날카로운 비판으로 열기를 띠기도 한다. 이러한 작가들간의 의사소통은 비평문화가 취약한 대구지역에서 새로운 문화운동으로서의 가능성을 내다보게도 하며, 세계 예술의 조류, 한국 현대미술의 방향 등에까지 다각도로 모색하는 기회도 돼 긍정적 효과를 거두고 있다.

작가 남춘모(40)씨는 "회를 거듭할수록 외부에서의 관심도 높아져 앞으로는 정회원 외에 외부 작가도 초청, 토론하는 기회도 가질 계획"이라고 밝혔다.

김지석기자 jiseok@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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