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정치가들은 입만 열면 큰 정치를 하겠다고 호언한다. 어떤 정치가 큰 정치인가. 고대사회의 이상향(理想鄕)은 백성이 밭 갈아 그곳에서 나는 소출로 배불리 먹되 임금의 존재를 의식하지 않고 살아가는 곳이다. 백성이 밭 갈며 부르는 노래를 '격양가'(擊壤歌)라 하는데, '격'이란 두드린다는 뜻이고, '양'은 흙을 의미한다. 따라서 '격양가'는 밭 갈면서 부르는 일종의 노동요(勞動謠)라 할 수 있다.'우리는 해 뜨면 일하고/해지면 쉰다/우물 파 마시며/밭 갈아먹으니/제왕의 힘이 나와 무슨 상관이랴'
요임금 시절에 어떤 사람이 길을 가다가 한 늙은 농부가 밭 갈면서 이 노래를 부르는 것을 들었다. 그것을 보고 길 가던 사람은 '위대하구나, 요임금의 덕이여!' 라고 감탄했다.
해가 뜨면 밭에 나가서 열심히 일하고 해가 지면 집에 돌아와 단잠을 잔다. 마당에 우물 파서 마음껏 마시니 그곳에는 나라의 힘이 미치지도 않고 또한 백성은 누가 나라를 다스리고 있다는 의식도 없다.
아무리 먹고 입는 것이 족해도 나라가 사사건건 백성의 삶에 간섭한다면 그 나라는 잘 다스려지는 나라가 아니다. 백성이 국가라는 존재를 의식하지 않아도 괜찮은 정치, 다스리는 것 같지 않은데 다스려지는 정치, 이것이 이른바 큰 정치이다.그러므로 정치의 위세가 떨치는 나라의 백성은 불행하다. 아침저녁으로 다스리는 사람의 말씀을 들어야 하는 나라의 백성은 불행하다. 대통령의 이름을 온 백성이 다 기억해야 하는 나라는 결코 잘 다스려지는 나라가 아니다. 대통령이 누구인지, 관청이 어디에 있는지를 모르고서도 살아가는데 아무런 불편을 느끼지 않는 나라의 백성은 행복하다.
법령이 세분화되고 까다로워지면 도둑이 많아진다. 그러므로 큰 정치가 이루어지는 나라의 법령은 간결함을 그 첫째로 삼는다. 어떤 시책을 펴나가고 적폐를 쓸어 없애려 해도 그에 따른 법령이 없어서 어쩔 수 없다고 강변하는 정치가는 이미 정치가가 아니다. 참다운 민주주의 국가는 백성이 주인 되는 나라가 아니라 그가 주인이라는 그 의식조차 잊고 살아가는 나라이다.
새해 벽두의 영수회담과 그 결과에 비애와 슬픔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큰 정치를 하겠다고 공언하던 우리의 두 지도자가 주고받았다는 말을 들어 보라! 혹시 그 자리에서 시정 잡배들처럼 삿대질이나 멱살잡기는 하지 않았는지 모르겠다.
거기에다 또 한 분의 늙은 정치가도 한 몫 끼여 들어 훈수를 하고, 전직 대통령도 가세하여 진흙탕 속의 개싸움 같은 짓을 연출한다. 경제나 민생 문제를 염두에 두기에는 너무나 격앙되어 있다. 이것이 그들이 말하는 큰 정치이다.
'나도 그동안 정치하면서 정치 자금 받아썼다. 그러나 조건 있는 돈, 불의한 돈은 받은 적 없다' 이것은 현직 대통령의 말씀이고, '기대를 갖고 청와대에 갔는데 실망만 하고 나왔다. 경제가 어렵지만 김 대통령이 이런 식으로 정국을 끌고 가는 것을 방치할 수 없다'.
이것은 야당 당수의 변이다.
'지금 김대중씨가 하는 짓은 공공연한 정치보복이며, 김대중씨는 정치보복의 화신이다. 김대중씨가 하는 것은 최후의 발악적 행위이다'. 이것은 전직 대통령의 독설이다.
"…자기가 뭘 안다고. 이건 대한민국이지, 한나라당 나라가 아니야. 자기 맘에 안 든다고 덤비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소리야".
이것은 훈수이다. 이것이 큰 정치를 하겠다는 분들의 말씀이다. 말씀만으로는 큰 정치는 고사하고 조그마한 마을에서 이웃 간의 송사(訟事) 하나 제대로 다스릴 것 같지 않은 분들 같다. 울고 싶다.
한양대 교수.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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