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은 음력 정월 초하루. 세태는 많이 달라졌지만, 설날 떡국을 끓여 먹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왜 설날만 되면 떡국을 먹는 걸까? 쌀밥도 있고 쫄깃쫄깃한 찰밥도 있는데, 다른 명절·제사 때와 달리 떡국을 고집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떡국을 먹는 의미=설날은 천지만물이 새로 시작되는 날인 만큼 엄숙하고 청결해야 한다는 뜻에서 아무 것도 섞지 않은 깨끗한 흰 떡국을 끓여 먹게 됐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새해가 티없이 밝은 한 해가 되기를 소망하는 뜻이 담겨있다는 것이걸 먹음으로써 나이를 한 살 더하게 된다는 뜻에서 떡국은 '첨세병'(添歲餠)이라 불리기도 했다. 물론 궁중에서는 한여름 복날 별식으로 먹기도 했지만.
떡을 길게 늘여 가래로 뽑는 것에는 재산이 쑥쑥 늘어나고 장수하라는 축복의 뜻이 들어 있다. 전통요리 연구가 윤숙경 전 안동대 교수는 "가래떡을 둥글게 써는 것도 엽전의 모양을 본 뜬 것으로, 재화가 충분히 들어 오기를 바라는 기원이 담겨 있다"고 했다.
국가 중요 무형문화재 38호 조선왕조 궁중음식 이수자인 한복진씨는 "떡국은 왕족·양반·서민이 차별 없이 먹었던 설 음식"이라며, 가래떡을 하룻밤 정도 굳힌 뒤 납작하게 돈짝처럼 보이도록 썰어 끓였다"고 했다. 때문에 요즘 가게에서 파는 떡은 너무 길게 썰어 품위 없어 보인다는 것.
그래서 예부터 종부들은 꾸덕꾸덕 가래떡이 굳으면 차례상에 올릴 떡국용으로 떡을 둥글게 정성 들여 썰었다. 나머지 가족 친지가 먹을 것은 써는 방식이 달랐다. 그건 어슷썰기. 이렇게 하는 것이 힘도 적게 들 뿐더러 떡 양도 더 많아 보인다.◇떡국의 지방별 특징=조후종 교수(명지대 식품영양학과)는 "'동국세시기'에는 떡국을 끓일 때 흰 떡과 소고기·꿩고기를 쓰며, 꿩을 구하기 힘들 때는 닭을 쓰는 경우도 많다고 적혀 있다"고 했다. '꿩 대신 닭'이라는 말도 여기서 비롯됐다는 것.
하지만 떡국을 먹는 풍속은 지방에 따라 달라 충청도에선 쌀가루를 반죽해 가래떡처럼 길게 늘인 뒤 어슷 썰어 떡국과 같은 방법으로 끓이는 '생떡국'이 유명하다. 개성 지방에선 예전부터 '길상'을 뜻하는 누에고치 모양을 본떠 '조랭이 떡국'을 끓여 먹었다.
그러나 쌀농사가 적은 북쪽 지방에선 만두국이나 떡만두국을 먹었다. 중국 서남부에서도 떡국은 설 음식의 첫번째로 꼽혀, 무처럼 둥근 떡을 새끼손가락 굵기로 썰어 끓여 먹는다. 특히 허베이성에서는 일년 내내 돈을 모은다는 뜻으로 둥글게 돈 모양으로 썰어 끓인다.
◇노년층의 아련한 향수=내일 아침엔 모처럼 어느 집이나 가족이 한 자리에 모여 조상에게 차례 지내고 오순도순 떡국을 나눠 먹을 것이다. 떡국의 의미 마냥 살림이 쑥쑥 불어나는 희망찬 한 해가 되기를 소원하는 바람도 담을 터.
그러나 노년층에게 떡국은 차라리 옛 향수에 잠기게 하는 아련한 추억거리이기도 하다.
"50년 전만 해도 집집마다 설 준비로 온 동네가 떠들썩했지. 물에 불린 쌀을 디딜방아로 빻아 쪄서 안반 위에 올려놓고 힘센 남정네들이 떡메로 내려치면 곱고 매끄러운 떡이 만들어졌어. 그걸 떡판에 놓고 손으로 솜씨좋게 부비면 긴 가래떡이 됐지". 이영순(63·대구 내당동) 할머니는 금세 옛날을 떠올렸다.
이제는 슈퍼마켓에 가 곧바로 살 수 있는 떡국 거리를 준비하기 위해 옛날 사람들은 며칠씩 허리가 휘도록 일해야 했던 것이다. 그때만 해도 세배 손님에게 빠짐없이 떡국을 끓여 대접하느라 쌀 한 가마니씩 가래떡을 빚는 집도 있었다. 그러다 보니 세배 손님들은 하루종일 떡국을 몇그릇씩 먹게 되지만, 자동차가 없다시피 하던 시절 어른을 찾아 뵈러 1, 2시간씩 걸어다니다 보면 이내 출출해져 먹고 또 먹어도 질리지 않았다는 얘기.
동아줄 마냥 기다랗게 늘어진 가래떡은 어린 아이들에겐 재미있는 장난감이기도 했었다. 말랑말랑한 가래떡을 장난스레 잡아 당기다 결국 끊어뜨리고 마는 아이들. 어머니야 꾸지람을 하지만, 할머니가 엉덩이를 토닥이며 내 주시는 꿀에 찍어 먹으면 그렇게 고소하고 달콤할 수 없었다.
이영순 할머니는 6·25전쟁 이후 그런 모습을 점점 보기 어려워졌다고 했다. 전쟁 통에 쌀이 귀해진 탓도 있지만, 생활이 현대화 되면서 궂이 집에서 힘들여 떡을 만들 필요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김영수기자 stella@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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