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식탁에서 쓰는 주부일기

"엄마, 숙제도 내가 알아서 하고 준비물도 다 내가 챙길테니 이제 엄마는 그런 걱정하지 마세요".

며칠 전 결혼 10주년을 맞은 박혜희(35·대구시 달서구 파호동 삼성명가타운)씨. 초등학교 4학년인 아들 대현이의 무 자르듯 내뱉는 말에 꽤나 충격을 받았다. 불현듯 '아이들이 4학년만 되면 엄마 품을 떠난다'는 동네 아줌마들의 말이 떠올랐다. "마냥 엄마만 찾을 것 같던 자식들이 어느 날 엄마보다는 친구를 더 찾고 엄마의 관심을 부담스러워 하게 될거야".

사실 요즘들어 대현이의 변화를 눈치채고 있던 터였다. 불과 작년까지만 해도 이래라면 이래하고 저래라면 저래했는데 이젠 부쩍 이유가 늘어났다. 엄마 말에 무조건 복종이라는 그간의 논리에 자기대로 할 말이 많은 것 같았다. '그래도 그렇지. 내가 지금까지 누굴 위해서 살아 왔는데…. 지가 누구 아들인데…'.

오늘도 새 학년초라 숙제는 했는지 걱정스런 마음에 한마디했는데 정나미 똑 떨어지는 대답으로 돌아온 것이다.

'그래, 이게 바로 아이가 컸다는 뜻일 게야'. 애써 스스로 위로 해보지만 마음 한구석은 여전히 허전하다.

겨우 4학년인데 벌써 엄마의 존재를 부담스러워 하다니. 자식도 품안의 자식이라 했던가? 맞아! 부모 입장에서 스스로 혼자 설 수 있는 힘을 길러 줘야지.

그런데 말처럼 행동으로 옮기는 게 쉽지 않았다. 왜? 내 자식이기 때문에?

남편이 퇴근하자 서러운 마음에 급기야 눈물을 보이고 말았다. 농반 진반으로 하는 남편 말이 오늘따라 가슴을 찔러댔다. "모든 관심이 애들에게만 가 있었으니 충격도 클 수밖에. 어디 그 열정의 반만이라도 내게 쏟아보라구".

박운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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