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이웃-정통 유럽식 춤에 매료 전국 누비며 무료 강습

아파트 평수와 통장 잔고, 그럴듯한 직업과 가족. 21세기를 살아가는 도시인들의 공통 관심사다. 생활 동선도 단순하다. 집에서 직장, 직장에서 집으로… 저마다 100m 달리기 선수처럼 가쁜 숨을 몰아쉬며 달리고 있다.

댄스 스포츠 강사 정수진(25)씨. 단거리선수처럼 바쁘게 사는 사람들 앞을 불쑥 가로막고 섰다. 전국에 '춤바람'을 일으켜 보겠다는 가당찮은(?) 꿈을 꾸고 있는 아가씨. '춤바람'이라는 말에 대뜸 빙글빙글 돌아가는 지루박이니 블루스를 떠올린다면 틀렸다. 그녀의 춤은 어둑한 조명 아래서 쉬지 않고 돌아가는 느끼한 춤꾼들의 사교춤은 아니다.

"무도학원은 많지만 제대로 된 댄스 스포츠를 가르치는 곳은 드물어요. 대부분 사교춤으로 불리는 이른바 지루박, 블루스같은 것들이죠. 그것도 한국식으로 묘하게 뒤틀린 것이라 외국인과는 박자를 맞출 수도 없어요". 그녀는 정통 유럽식 댄스 스포츠를 추구한다. 2000년 시드니 올림픽 시범종목으로 채택되기도 했던 왈츠, 탱고, 퀵스텝 등이다. 물론 라틴댄스인 룸바, 차차차, 삼바 등도 곁들인다.

정수진씨는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대학까지 15년 이상 한국 무용을 배운 사람이다. 대학 4년 동안 줄곧 장학생이었을 만큼 무용외엔 곁눈질 한번 해 본 일이 없었다. 그런 그녀가 지난 해 초 우연히 댄스 스포츠를 알게되면서 풍덩 빠져 버렸다.

"순수 무용도 좋아요. 하지만 엘리트 예술, 공연 예술로 존재할 뿐 대중적이지 못해요. 어린아이부터 할아버지, 할머니까지 누구나 즐길 수 있는 춤문화를 보급하고 싶어요". 한국 무용을 전공했던 그녀가 어느 날 댄스 스포츠 보급에 나선 이유였다. 그녀처럼 댄스 스포츠 무료 보급에 나서고 있는 강사는 전국에 10여명. 전국 100여개 지부와 동호회를 순회한다.

"그냥 좋아서 하는 겁니다. 사람들한테 춤을 가르치고 저도 배우고…춤이 정말 좋습니다. 뻣뻣한 '통나무'들이 한두 달만에 '문어다리'로 변해 가는 걸 보면 정말 신이 나요".

정씨는 매주 금요일과 토요일만 대구에 머문다. 나머지 시간은 서울과 울산을 오가며 스스로 댄스를 배우기도 하고 문화센터와 동호회를 찾아다니며 가르치기도 한다. 대구지역 강습은 매주 토요일 오후 7시부터 2시간씩 남구 이천동의 한 건물에서 가진다(016-514-5187).

매회 20~40명 정도가 모이는데 강습료는 없이 음료수와 임대료 충당용으로 5천원정도 회비를 내면 된다.

그녀는 또한 인터넷 네트워크를 조직해 같이 공부도 하고 저변확대도 꾀한다. 전국을 오가는 기차 안에서 원서를 번역해 가며 ISTD(영국왕실 무도교사협회)주최 자격 시험준비에도 열심이다.

"댄스 스포츠는 혼자 할 수 없어요. 상대가 있어야 하고 상대에 대한 신뢰와 배려가 바탕이 돼야 하죠"

정씨는 우아하게 보이는 댄스 스포츠가 사실은 파트너끼리 싸움도 잦은 춤이라고 했다. 그래서 그녀는 회원들에게 인터넷 메일 보내기를 게을리 하지 않는다. 일상에서 느낀 감동이나 시집에서 읽은 좋은 시구를 전해주기 위해서다.

그녀의 춤은 나른한 잠에 빠진 우리네 일상을 흔들어 깨우는 자명종 같다. 이 봄, 그 자명종 소리에 맞춰 한번쯤 일상에서 탈출해 보는 것도 좋겠다. 그러나 너절하고 초라해도 우리가 돌아가야 할 곳은 결국 일상이라는 사실을 기억하고 있어야 할 것 같다.

조두진기자 earful@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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