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강원도 산불이 번져 원자력 발전소 가동을 중단하는 등 산불로 몸살을 앓았던 울진에 또 다시 대형 산불이 발생했다.
건조경보가 내려진지 사흘째인 19일 오전 11시35분쯤 울진군 원남면 갈면리 야산에서 발생한 산불은 20일 오전 1시 현재 산림 60여ha(산림청 추정)를 태우면서 기성면 삼산리와 현종산 등으로 계속 번지고 있다.
불은 19일 오후 4,5시쯤 접어들면서 헬기 13대가 동원되는 등 민.관.군의 집중 진화로 큰 불을 잡는듯 했으나 해가 지면서 헬기의 진화작업이 중단된데다 순간 최대 풍속16m의 강풍이 불면서 다시 확산된 것.
울진군과 경찰서는 이날 오후 3시쯤 최맹원(88) 할아버지 등 기성면 삼산 주민 3가구 5명을 일단 기성면 복지회관 등에 대피 시켰다. 그러나 아직까지 인명 피해는 없는 상태다.
군은 밤새 불이 현종산 중계소를 덮칠 것에 대비해 공무원과 군장병들을 집중 배치하고 소방차를 동원해 물을 계속 뿌리고 있다.
이날 불이 나자 펌프차 4대, 공무원.군인. 주민 등 1천여명이 동원됐으나 날씨가 건조한데다 산세마저 험하는 등 접근이 어려워 초기진화에 실패했다.
불은 바람을 타고 계속해서 동남쪽으로 번져 오후 1시쯤 경찰 무전망과 MBC.KBS.TBC 등 방송 3사, 이동 통신업체의 중계탑이 있는 한국통신의 현종산(해발 417m) 중계소 앞 100여m까지 번졌다.
이로인해 한국전력이 오후 3시쯤 중계소로 보내는 전력을 차단하는 바람에 TBC 중계탑에 에러가 발생, 울진읍 등 울진 북부 일부 지역 주민들이 3시간 가까이 TV 시청을 못하는 등 불편을 겪기도 했다.
또 황광준(31)씨 등 중계소 직원 2명과 015 시티폰 콘테이너 철거작업을 하러 왔던 이선홍(33.울진군 원남면)씨 등 주민 6명은 고립돼 한동안 가족들과 진화대원들의 애를 태우기도 했으나 오후 3시쯤 큰 불길이 잡히면서 무사히 빠져 나왔다.
고립됐던 조환(32.울진군 울진읍)씨는 『멀리 떨어진 원남 갈면리 쪽에서 연기가 오르기에 설마 여기까지야 오겠냐며 안심하고 작업하고 있었는데 순식간에 불이 코 앞까지 달려온데다 짙은 연기로 앞을 분간할 수 없어 몹시 불안에 떨었다』고 했다.
강풍을 타고 울창한 삼림을 마구 삼키는 화마와 그가 토해 내는 불기둥, 그리고 이를 진화하기 위해 공중을 나르는 헬기, 긴장과 초조속에 밤을 지새우는 진화대원들...그야말로 전쟁을 방불케하는 상황이다.
◇송이산 피해=송이 채취농가들은 벌써부터 걱정이 태산이다.
산불이 발생한 기성면 삼산리 일대는 군내에서 알아주는 송이밭인데 이번 산불로 당장 올 가을 송이채취에 상당한 차질이 예상되기 때문.
특히 송이는 수령 30∼60년 이상된 소나무에서만 자생하기에 타버린 소나무의 완전 복구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소요되기 때문에 더욱 난감해 하고 있는 것.
울진은 전국 최대 송이 생산지. 그 중에서 이 지역 생산량은 군 전체 10%로 연간 7t을 생산, 4억여원의 농외 소득을 올리고 있다.
주민 황인호씨는 『산불로 초토화된 임야의 상당수가 송이밭』이라며 『산불 발생시 지표온도는 섭씨 370도 내외로 땅 속의 버섯 포자까지 태워 죽이기 때문에 산불이 지나간 곳은 끝장』이라고 했다.
송이 채취농 최순백(34)씨는 『삼산리에서 송이는 오히려 벼 수확을 능가하는 소출로는 최고의 작목』이라며 『송이는 소나무의 탄수화물을 공급받아 자생하는데 산림을 복원하기까지는 최소 30년이 소요되는 만큼 주민들의 생계가 막막하다』고 했다.
◇ 현종산 통신 중계소를 사수하라=산불이 통신 중계소가 있는 현종산으로 번져오면서 경찰과 소방관, 통신업체 직원, 군청 직원들은 초비상이 걸렸다.
현종산 정상엔 경찰의 무선망과 방송사의 중계탑, 이동통신업체의 철탑 등이 있기 때문. 군청과 소방서, 경찰, 군부대측은 4시20분쯤 기성면사무소 내에 합동상황실을 만들어 시시각각 변하는 산불의 추이를 지켜보며 대응태세를 갖췄다.
사태가 심각해진 것은 날이 어두워지면서 헬기 진화작업을 중단하면서부터. 합동상황실은 공무원 100여명과 소방차 1대를 배치, 현종산 정상 일대에 불길이 접근하지 못하도록 배수의 진을 쳤다….
20일 새벽 2시 현재 불은 원남면 덕신리 현종산에 있는 통신 중계소에서 직선거리로 불과 50여m 떨어진 거리에 있는 상태. 긴장감은 더욱 높아졌다. 강풍이라도 한번 휙 불면 금방이라도 옮겨 붙을 것 같은 거리다.
불길은 시뻘건 혀를 날름거리며 자꾸만 거리를 좁혀 들어오고 있다. 투입된 진화대원들은 저지선을 구축하느라 안간힘을 쏟았다. 밤새 물을 퍼부었다.
◇피신 70대 할아버지 밤새 전전긍긍= 『우리 마을은 안전하나?』
19일 오후 3시쯤 경찰서의 대피령에 따라 임시 대피소인 기성면 복지회관으로 피신한 최대기(78.울진군 기성면 삼산리)할아버지는 오며가는 면사무소나 파출소 직원들에게 마을의 안녕을 물었다.
6.25 전쟁때 울산 방어진으로 피난을 간 것을 제외하곤 80 평생 고향을 등져본 적이 없다는 최할아버지. 불길이 마을에서 50여m까지 접근했을 때 무작정 경찰관의 손에 이끌려 몸만 겨우 빠져 나왔다는 최할아버지는 집에 두고 온 바둑이를 데려오지 못해 못내 불안한듯 연신 담배만 물어댔다.
『바둑이는 3년 전 기성장에서 사서 지금껏 친구처럼 지내왔는데 급히 오느라 그 놈을 데려오지 못했어. 밤을 보냈줄 알았으면 (만약의 경우를 대비해) 고삐라도 풀어놓고 왔어야 했는데…』
산불 확산 소식에 씁쓰레한 웃음을 지으며 들릴듯 말듯한 목소리로 내뱉는 최할아버지의 독백은 긴 여운을 남겼다.
울진.황이주기자 ijhwang@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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