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 자크 루소의 '참회록'을 보면 그의 생애에는 까닭 모를 일들이 적지 않다. 수많은 귀부인들과 연애를 하면서도 하숙집 딸 테레에즈와 결혼한 것도 그 한 예다. 그는 평생 시계 보는 법을 가르쳐도 모르는 테레에즈와의 사이에 다섯 아이를 낳았지만 그녀에게 맡길 수 없어서 모두 육아원으로 보냈다. 교육론 '에밀'을 써서 '교육학의 아버지'로 알려졌던 그가 자식 교육은 남에게 맡긴 아이러니를 연출한 셈이다. 그렇다면 그의 결혼은 실패이기만 했을까.
▲그러나 반드시 잘못된 선택이었다고는 할 수 없을 것 같다. 그가 말년에 자연종교 이론 때문에 늘 체포 위협을 느끼며 도망다니는 신세가 됐을 때, 귀부인들은 물론 많은 사람들이 침 뱉고 돌을 던져도 끝까지 남은 사람은 오직 테레에즈뿐이었다. 그는 돈과 학벌과 가문을 계산하기보다 힘들어도 마지막까지 있어 줄 사람을 택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근래의 세태를 보면 '돈'이 제일의 결혼 조건인 것 같아 씁쓰레하다.
▲요즘 경제 문제로 남편과 헤어지는 중년 여성들이 크게 늘고 있는 모양이다. 서울시가 발간한 '2000년 서울 여성 백서'에 따르면 지난 99년의 이혼 여성은 30대 43.6%, 40대 27.1%로 30, 40대가 70% 이상을 차지했으며, 남편의 실직으로 파경을 맞은 부부의 경우 90년에 비해 3배나 된다. 혼인 형태도 98년부터 여성 재혼자와 남성 초혼자의 결혼 비율이 남성 재혼자와 여성 초혼자가 결합하는 경우를 앞질러 세태의 변화를 말해 준다.
▲한편 한 결혼정보회사의 설문조사에 의하면 재혼 희망 여성.남성 모두 상대의 첫 조건으로 경제력(35%)를 꼽고, 그 다음으로 외모(31%)를 중시했다. 특히 재혼 희망 여성들 뿐 아니라 초혼 여성들도 경제력 있는 40, 50대 이혼 남성을 선호하는 경향이 뚜렷해졌으며, 30대 초혼 여성 1천500명 중 '경제력만 있다면 이혼남도 괜찮다'고 응답한 여성이 250명에 이르러 지난해의 100명, 99년의 30명에 비해 크게 늘어났다.
▲이 두 조사가 말해 주고 있듯이, 우리 사회의 물질만능주의가 결혼과 이혼의 장에서도 가장 중요한 기준으로 작용하고 있어 결혼마저 '상거래'로 전락한 느낌이다. 우리 사회가 '계약 사회'로 바뀌어 가는 탓도 있겠지만, 종결이 아니고 시작이며 순수하고 아름다워야 할 결혼이 추악하게 왜곡되고 변질되는 느낌마저 버릴 수 없게 한다. 건전한 결혼이 건전한 가정을 이루는 기초이며, 가정이 사회의 기초임을 떠올린다면 더욱 그런 생각이 든다.
이태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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