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노인대상 악덕상술 극성

노인을 대상으로 한 악덕 상술이 판 치고 있다. 노인이 많은 농촌은 피해가 더 심각하다. 이런 속임수 판매는 노인에게 깊은 고뇌를 갖다 주고, 가족들과의 불화로 가출하는 사태까지 빚고 있다. 그러나 노인 소비자 보호책은 부실한 편.

문제가 심각하자 영주시청과 영주YMCA가 지난 23일부터 노인들을 대상으로 '소비자 교육'을 실시할 정도. 다음달 29일까지 계속되고 있는 이 교육 자료, 두 기관 소비자 보호기구에 신고된 사례 등을 따라 피해 사례와 대책 등을 살펴 본다.

◇피해 사례

박○순(75.영주 휴천동) 할머니는 작년 12월 동네로 찾아 온 판매원이 "온천과 관광을 공짜로 시켜 주겠다"는 말에 유혹돼 대전 유성온천까지 따라 갔다가, 판매원들의 강압적인 권유에 못이겨 96만원짜리 온열치료기를 사겠다고 약속하고 말았다. 풍기읍 수철리의 한 마을 노인 22명도 무료 온천관광에 현혹돼 따라 나섰다가 음식물.선물 등을 제공받고는 전원이 22만원이나 하는 인삼 농축액을 사게 됐다.

무료로 나눠주는 사은품이라거나, 추첨에 당첨됐다고 해서 상품을 받았다가 곤욕을 치른 경우도 있다. 서○호(67.영주 휴천2동) 할아버지는 번개시장에 갔다가 "무료 사은 기간이니 갖고 가라"는 판매원의 말에 따라 인삼 농축액 세트를 받았다. 그러나 "본사에 보고해야 된다"는 판매원 말에 속아 이름.주소를 가르쳐 줬다가 3주 뒤에 대금 25만원의 청구서가 날아 왔다. ○계선(68.봉화군 물야면) 할머니는 지난 1월 말 봉화시장에서 홍화씨.인삼 등이 추첨됐다며 판매원이 주는 물품을 받고는 전화번호.주소 등을 불러줬다가 50만원을 청구 당하는 일을 겪었다.관공서를 사칭하는 판매도 있다. 양○경(63.영주시 순흥면) 할머니는 작년 겨울 어떤 청년이 "가스안전공사에서 점검차 나왔다"며 부엌의 가스레인지를 살핀 뒤 "폭발 위험이 있다. 새 것으로 교체해야 한다"고 해 믿었다가 애를 먹었다. 한달 후 가스레인지 대금 14만원이 청구됐기 때문.

그 밖에도 △'강연회'에 무료 초대한 뒤 전집류.건강식품 등을 사게 만드는 경우 △경로잔치.제품설명회를 빙자해 간단한 선물.여흥을 제공한 뒤 값비싼 건강 관련 제품을 파는 경우도 있다.

◇심지어 가출까지

노인들은 노인정 등으로 찾아 온 장사꾼들에 의해 주로 피해를 입고 있다. 이들은 유창한 화술을 수단으로 사은품.무료상품 등을 사도록 하거나, 심지어 이름.주소 등을 거짓말로 알아낸 뒤 상품을 부쳐 버리는 경우도 적잖다. 품목별로는 노인들의 약점을 노린 건강 관련 상품이 많다.

또 판매원들은 노인들이 허위.과장 설명에 쉽게 넘어가는 특성, 사은품.무료관광 등을 제공받고는 미안해서 구입 요구를 쉽게 거절하지 못하는 특성 등을 충분히 악용하고 있다.

그러나 노인들은 별도의 수입이 없기 때문에 선뜻 해 놓고는 후회해 가슴 앓이를 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값을 자녀들에게 떠넘겨야 하는 부담감은 노인들을 정신적으로 크게 해치는 것으로 판단됐다.

이 문제는 또 며느리나 자녀와의 갈등.불화까지 초래, 더욱 심각한 문제를 부르고 있다. 영주1동 김○옥(77) 할머니는 지난달 말 동네 노인회관에서 동충하초를 25만원에 8개월 할부로 샀다가 며느리와 말다툼까지 벌였다. 그 후 할머니는 연락도 없이 멀리 떨어져 있는 외지 딸네 집으로 가버려 가족들간에 잘잘못을 놓고 불화가 생기기도 했다. 영주YMCA 이호춘(39) 사무총장은 "상담자 중에는 가족 불화를 하소연하는 경우가 많다"며, "특히 농촌에서 피해가 심각하다"고 했다.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소비자 보호 관계자들은 △설문조사.추첨 등을 통한 무료증정 및 무료관광, 공장 견학은 거절하라 △값비싼 사은품.제품은 공짜로 주겠다고 해도 의심하라 △관공서나 공공기관 직원이라고 할 때는 해당 기관에 확인하라 △꼭 필요한지 다시 한번 생각해 보거나 가족과 의논하라 △제품을 살 때는 제품이름.가격.판매처주소.전화번호 등이 적힌 영수증.계약서를 요구하라고 충고했다.

물품 구입을 해지할 때는 계약 7일(할부판매), 10일(방문판매), 20일(다단계) 이내에 해지 의사를 글로 써 내용 증명으로 그 회사에 보내면 된다. 이렇게 했는데도 대금이 청구되면 시청.군청의 소비자상담실, YMCA 시민중계실 등에다 도움을 요청하면 좋다.

이런 한편 전문가들은 노인 보호를 위한 법적 장치 강화도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미성년자의 계약은 부모 동의가 없을 경우 취소될 수 있도록 한 민법 규정을 노인에게까지로 확대해야 한다는 것. '방문판매 등에 관한 법률'에 65세 이상 노인 소비자 보호 조항을 별도로 넣어 청약 철회기간을 특별히 더 길게 규정하거나, 노인이 계약할 때는 일반 때 보다 더 자세한 정보를 제공토록 의무화하며, 그렇게 했다는 증거물을 판매자측이 확보하지 않을 경우 처벌하는 등의 대책이 필요하다고도 했다.

영주.김진만기자 factk@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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