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주말에세이-이 친구야 조금만 기다리지 그러냐

봄볕이 화창한 일요일 오후 나는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전화선 저 멀리 아득하게 들리는 그 목소리는 울먹이며 차마 나오지 않는 소리로 친구의 죽음을 알려주었다. 그저 남의 일이라고 생각했던 일이 나에게도 닥쳐왔다고 생각하니 앞이 캄캄했다. 이렇게 쉽게 갈 수 있구나, 무엇 때문에 무엇을 위해 아둥바둥 살아왔던가. 그저 이렇게 눈을 감아 버리면 그만인 것을, 하지만 남아 있는 우리는 그의 빈자리를 이제부터 느끼며 가슴 아파해야 한다는 사실이 나를 답답하게 내리눌렀다.

하던 일을 다 팽개치고 그 친구가 누워있다는 병원의 영안실로 달려갔다. '그래. 이제 이런 일이 바로 나의 곁에서 벌어질 수도 있구나'라는 생각을 하면서 그 친구와 함께 했던 시간들이 다시금 떠올랐다.

집이 신천동이던 우리는, 지금은 신세계아파트가 되어 버린 학교로 매일 같이 걸어다녔다. 30분 정도 걸리던 그 길을 함께 걸으며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당시 한창 인기 있던 드라마 ' 여로'의 걸음을 흉내내기도 했고, 또 정체불명의 "이와 똑같은 편지 7통을 7명에게 배달해야만 당신에게 루즈벨트 대통령과 같은 행운이 올 것이다"라는 내용이 담긴 행운의 편지에 대해서도 이야기했으며, 또 우리의 어깨에 무겁게 얹혀있던 입시문제, 혹은 이성문제, 그리고 삶의 문제까지 우리는 그때 그때마다 의견을 나누었다.

물론 서로, 아직은 여물지 않은 생각이었기에 명확한 결론에 도달한 것은 그렇게 많지 않았다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우리는 부모님께 혹은 형과 누나에게 의논하지 못한 부분들을 그렇게 나타내고 대화하면서 스스로 정리하기도 하였던 것이다. 차가운 바람이 뺨을 때리던 겨울, 어둠이 깔리는 신천변을 걸으면서 그래도 나는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에 무척 다행스러워 하였던 것이다.

그후 서로 다른 고등학교에 진학하여 한동안 소식을 모르다가 대학교에서 다시 만났지만 서로간, 너무 바쁜 일로 인해 함께 한 시간은 얼마 되지 않았다. 그리고는 취직, 결혼 등등의 먹고사는 일이 바빠서 낚시라도 한번 같이 가자는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그런데 덜렁 그런 연락을 받았으니 내 마음의 충격이 너무 커서, 앞이 아득해질 수밖에 없었다. 늘상 곁에 있고 연락만 하면 언제든지 만날 수 있다고 생각했었기에 나의 바쁜 일이 먼저이고 그와 만나는 일은 나중이라는 생각으로 미루었던 일이 한꺼번에 깨져버린 것이다. 이제는 아무리 연락해도 만날 수 없는 사이가 되어버렸다.

과연 무엇이 바쁜 일이고 무엇이 먼저인가 100년 안 되는 육신의 삶에 갇혀서 정작 중요한 것을 뒤로 미루는 잘못을 나는 저질렀던 것이다. 우리 사회에 만연해 있는 '빨리빨리'로 인해 나는 얼마나 빨리 도로를 누비고 다녔으며 또 출세를 위해 혹은 잘먹고 잘살기 위해, 나와 내 가족의 안위를 위해 남들, 아니 친구와 이웃까지 뒤로 미루는 삶을 살지 않았는가.

가을날 길바닥에 뒹구는 날개 찢어진 나비를 보며 느끼던 인생의 허무가 정말 부질없는 말장난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상 위에서, 아니 머리 속에서 나누던 사고의 유희 일뿐, 친구의 미소짓는 사진을 보며 나는 아무런 생각도 떠오르지 않았다."그래, 그렇게 누워 있으니 행복한가, 친구여. 삶의 모든 무게를 벗고 편안한 길로 들어섰으니 정말 행복한 곳으로 가서 우리를 기다리게. 우리도 얼마 남지 않았으니…"

병원을 나오면서 채 눈물이 마르지 않은 눈으로 그 친구가 누워있는 건물을 돌아봤다. 여기에서도 며칠 있지 못하고 결국은 한줌 흙으로 돌아갈 그, 자신의 생일날 또 태어난 시간에 삶을 마감한 그를 생각하며 언제 낚시라도 한번 같이 가자고 혼자 말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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