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시와 함께하는 오후

새벽 역두에 서면 이미 끊어둔 차표 행선지와는

다른 방향으로 떠나고 싶다

제천행 개찰구 앞에서 서성이다가

마음 잡아 끌고

미진하게 돌아선다

지금도 그곳엔 비안개 자욱할까

그리운 바람 함께

귓가를 울리던 맑은 목소리

빗속에 찾던 목소리는 도시로 빠져나와

비안개 내리는 곳으로 가서

청아한 바람으로 울고 있네.

-이영상 '종소리'

새벽 개찰구 앞에서 불현듯 행선지와는 다른 곳으로 가고 싶은 충동을 느낀 적이 누구에게나 한 번은 있다. 이는 일상의 속박에서 자신의 흔적을 지우고 싶은 욕망 때문이다. 아니 자신의 본래 모습을 제대로 알기위한 숨겨진 열망 때문이다.

그러나 곧 포기하고 원래의 행선지로 향한다. 우리들의 인생이 그런 것인지 모른다. 끊임없이 자신의 욕망을 지우고, 본 모습을 지우고 이미 정해진 길을 따라 순탄하게 가는 것. 문학은 이런 자신에게 반역을 권하는 행위이다. 반성을 요구하는 권리이다. 오늘 새벽에는 무작정 제천행 기차를 타고보자. 김용락〈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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