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자흐스탄
승강장을 벗어나 역 건물로 들어서자,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공중전화 안내원이었다.
말쑥한 정장 차림의 중년여성이 전화라고 쓴 큰 종이를 목에 걸고 줄지어선 사람들을 위해 대신 다이얼을 돌려주고 있는데 그 모습이 너무나 진지했다. 전화 거는데 특별한 기술이 필요한 건 아니지만, 역내에 공중전화가 한대 뿐이다 보니 이런 직업까지 생겨난 것이다.
알마아타(카자흐어로는 '알마티')는 러시아어로 '사과(알마)'의 '아버지(아타)'란 뜻이다. 가로수를 덩치 큰 사과나무가 대신할 정도니 그럴만도 했다. 하지만 알마아타의 역사는 이 사과나무 굵기처럼 그렇게 깊지는 않다.
과거 카스피해에서 중국 톈산 북동지역까지 실크로드를 오가던 대상들이 잠시 쉬어가던 중간 기착지에 불과했다. 그러던 것이 100여년전 러시아 군인들에 의해 갑작스레 도시가 건설됐는데 그것이 알마아타이다. 이후 알마아타는 1998년 아스타나로 천도하기 전까지 카자흐스탄의 수도로 정치.경제.문화의 중심지였다.
알마아타에 들어서면 낯익은 이름의 외국간판들을 쉽게 볼 수 있다. 미국.일본은 물론 특히 삼성.LG.대우 등 한국기업의 간판들을 흔히 접하게 되는데, 그들이 이곳에 있는 이유는 풍부한 자원 때문이다.
카자흐스탄은 한반도의 12배에 이르는 영토에 막대한 양의 석유와 비철금속 등을 보유하고 있다. 광물중 망간, 크롬은 전 세계 매장량의 3분의 1이 이곳에 있고 텅스텐, 납은 CIS 전체의 절반을 갖고 있다. 특히 지난해 7월엔 동카샤간에서 발견된 유전은 매장량이 120억t에 달해 지난 30년간 전세계에서 발견된 유전중 최대규모인 것으로 밝혀졌다.
이 유전 하나로 카자흐스탄은 이란에 버금가는 세계 5대 석유자원 보유국으로 발돋움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구 1천500여만명의 카자흐스탄은 국민 1인당 GNP가 1천66달러에 불과할 정도로 후진성을 면치 못하고 있으니, 이는 옛 소련이 전략적으로 자원이 풍부한 이곳에 산업기반을 만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즉 자원과 기술이 결합하면 다루기 힘들어진다는 전략적 이유에서 였다. 때문에 '자원을 갖고도 쓸 줄 모르는 열등국가'라는 빈축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나자르바예프 대통령의 개방정책으로 외국 기업들이 앞다퉈 자원개발에 뛰어들기 시작했다. 특히 한국이 그 주도적 위치를 점하고 있다.
1993년부터 1999년까지 외국인 총 투자금액이 97억달러(1995년 이후 집중)인데, 그중 한국이 14억9천400만달러로 미국(32억600만달러)에 이어 두번째를 기록했다. 삼성물산이 경영하고 있는 제스카즈간 구리광산의 경우 고용인력만 6만명에 달해 카자흐스탄 최대 고용업체로 자리하고 있다. 제스카즈간 시의 12만명 인구와 발카쉬시 6만 인구가 이 광산하나로 생계를 유지하고 있을 정도다.
삼성 이외에도 LG와 대우전자, 대우자동차, 신동아 등이 진출해 있으며 알마아타에서 가장 높은 빌딩인 카자흐스탄호텔의 카지노까지 한국인이 운영한다.
한편 카자흐스탄의 철도는 그 대부분이 옛 소련이 건설한 것으로 1991년 독립과 더불어 운영권을 넘겨 받긴 했지만 경영미숙과 투자여력 부족으로 현상유지조차 힘들어 후진성을 면치 못하고 있다.
도시간 평균거리가 1천㎞에 이를 정도로 땅이 넓다 보니 관리가 어렵고 이에 정부가 나서 경영합리화를 추진하고 있지만 전체 공공부문 고용의 절반 이상을 철도가 차지할 정도로 비효율을 면치 못하고 있다. 총연장 1만5천㎞의 철길이 중국, 러시아, 우즈베키스탄, 키르키스스탄, 투르크메니스탄 등과 연결돼 있다고는 하지만 중국과 철도운행이 이뤄진 게 10년전이고 투르크메니스탄과는 불편한 관계 때문에 단절된 상태다.
카자흐 물류대학 알렉세이 다브도비치 모나스트르스키 부총장은 "시설낙후에도 불구하고 철도가 전체 물류수송의 75%를 차지할 정도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면서 "유럽은행의 투자로 3년전부터 알마아타에서 아스타나까지 시설현대화 작업을 하는 등 외자유치를 통한 시설개선을 꾸준히 추진하고 있다"고 말했다.
글 : 김기진기자
사진 : 김영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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