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루과이 라운드가 우리 농업을 죽일 것이라는 우려가 온 국민을 위기감 속으로 몰아 넣은지 어언 10년. 놀란 정부가 단군 이래 최대 액수라는 돈을 농업에 쏟아 넣어 온지 올해로 10년. 그리고 지금 UR이라는 폭풍의 파괴력이 드디어 본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과연 우리 농업은 이 파괴적인 힘을 이겨내고 굳건히 경쟁력 있는 모습을 만들어 나갈 수 있을 것인가? 그 동안 투입돼 온 거대한 액수의 자금은 제대로 힘을 작동시키고 있는 것일까?
매일신문은 창간 55주년 기념 특집으로 앞으로 15회 정도에 걸쳐, 몸부림 치는 농부들에게 과연 앞날은 있을지, 그리고 우리의 식량 안보는 굳건히 지켜질 수 있을지 재점검해 본다.
"이럴 수 있습니까. 조상 대대로 지켜 온 한우만 바라보고 있는데 호주산 살아 있는 소를 수입하다니… 한우 다 죽이는 생우 수입만은 절대 안됩니다".
곳곳에서 신음 소리
경주시 천북면 모아리 김영관(52)씨는 지난달 시작된 호주산 생우 수입 사태만 생각하면 아직도 가슴이 터질 것 같다. 400마리 한우를 돌보느라 하루 해가 짧은 김씨. 14살 때부터 가업을 이어 받아 소와 평생을 보내고 있는 중이다. 뒤를 잇도록 하기 위해 세 아들 중 둘까지 영남대 축산과에 보냈다. 그런데 살아 있는 소 수입까지 자유롭게 됐으니 아득할 뿐이다.
최근 중국산 마늘 수입에 항의, 자신의 마늘밭 700여평을 트랙터로 갈아 엎었던 의성의 김광원(43.봉양면 문흥리)씨 심정도 그 못잖게 타들어 가고 있다. "요즘 의성장이 제대로 서지 않습니다. 의성 농사는 쌀과 마늘이 전부인데 마늘이 안 팔리니 장이 될 턱이 있습니까".
그는 1980년대 입대할 때까지 3년간의 대구 생활을 제외하고는 고향을 떠난 본 적이 없다. 노모(78)와 부인(37)의 도움을 받아 1만평의 마늘과 벼 농사를 짓지만 갈수록 힘이 빠진다고 했다. "갈 곳만 있다면 떠나고 싶다"는 것이 그의 심정.
그래도 김씨는 벼 농사를 겸하니 덜한 편. 그렇지도 못한 마늘 전업농들은 밀려드는 중국산 마늘 때문에 앞이 꽉 막혀 버렸다. 양파.담배.보리 등으로 바꾸고 싶은 생각이 들 때도 있지만, 불안하기는 마찬가지.
이같은 고민이 어찌 이들 축산농과 마늘농들만의 것일까? 이제 이 땅의 농민들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채 '들녘을 지켜야 할지 떠나야 할지' 기로에서 선택을 강요당하고 있다. 떠나면 또 어디로 가야 할까?
1986년 9월에 시작돼 1993년 12월 타결됐던 우루과이 협상(UR)의 위력이 이제 현실화되고 있는 것이다. 무려 7년을 끌었던 이 협상의 지향점은 국제간 거래를 보다 자유롭게 하자는 것. 그 중 우리에게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대목은 농산물이었다.
농업 부문의 수출입은 세계적 무역 자유화 추세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폐쇄적이었다. 수입을 금지해도 서로 문제 삼지를 않았다. 세계 각국이 공통적으로 농업이라는 전통적 바탕을 바닥에 깔고 있었던 데다, 그 동안은 공산품의 수출입 자유화 확대만으로도 일이 벅찼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결국에는 농산물까지 수출입을 자유화해야 한다는 쪽으로 요구의 폭이 넓어진 것.
그래서 내려진 결론은 "당장 수입을 개방하기 힘든 품목에 대해서는 각국별로 몇년간 대비할 수 있는 기간을 허용하되, 그 기간이 지나고 나면 수입을 개방하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우리나라에게 주어졌던 그 기간이 지금 끝나가고, 대신 수입이 자유화되기 시작한 것이다.
결국 우리 농산물 시장을 지키던 빗장은 급격히 풀렸고 값싼 외국 농산물들은 하루가 다르게 홍수처럼 쏟아져 들어 왔다. UR 협상으로 우리나라는 1천672개 품목의 농.임산물(농산물 1천435개, 임산물 237개)의 수입 제한을 해제토록 강요됐다. 또 그 중 99%의 시장은 이미 개방됐다. 남은 것은 쌀 뿐.(국제기준상 쌀도 16품목으로 나눔)
가장 중요한 쌀은 10년간 시장 완전 개방이 유예됐으나 그 기한도 2004년 말에 마감된다. 그러나 유예되는 기간에도 '최소 시장'은 열어야 하고 그 양도 늘려가도록 돼 있다. '최소시장 접근 물량'(MMA)이라는 것이 그것.
국민들 관심마저 줄어들어
UR의 진짜 위력은 지금 닥치고 있지만, 세월은 무정한 것. 도시인들은 정말 걱정해 줘야 할 지금엔 문제를 잊어 버렸다. 농림부 국제협력과 박주환씨는 "UR협상 타결과 WTO 체제 이후 농산물 수입에 대한 일반 국민들의 관심이 많이 줄어든 것 같다"고 안타까와 했다.
정부도 농촌의 어려운 상황을 국민들에게 알리며 우리 농산물을 아껴 달라고 하기가 쉽잖은 상황. 통상마찰이 우려돼 UR 협상 당시처럼 여러 과정을 책자로 만들어 홍보할 수도 없다. 농림부 공보관실 김명근씨는 "과거 UR 때처럼 우리 농촌상황을 알리기 위한 체계적 홍보자료가 없고, 시민들의 관심이 적어서 그런지 담당부서에서도 별도의 자료를 만들지 않는 것 같다"고 했다. 시민들의 무관심이 농민들을 더욱 외롭게 하고 있는 것이다.
UR 협상이 막바지로 접어들었던 꼭 10년 전. 다급해진 정부는 각종 농업 지원 정책들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먼저 나온 것이 UR협상 타결 직전이던 1992년에 내놓은 제1차 농어촌 구조개선 사업. 1998년까지 총 42조원을 들여 농어촌 구조를 개선하겠다는 계획이었다.
이어 1994년엔 농어촌특별세법이 제정돼 별도의 15조원 특소세 사업이 시작됐다. 그해 7월부터 매년 1조5천억원씩 2004년까지 10년간 15조원을 투입한다는 구상. 그러나 98년까지 6조원을 투입한 뒤, 현정부에 의해 45조원 규모의 제2차 농어촌 투융자 사업(1999~2004년)에 편입됐다. UR로 우리 농촌에 무려 93조원이라는 사상 최대의 농촌 살리기 사업이 이뤄지고 있는 셈. 그래서 관계자들은 흔히 이를 "단군 이래의 최대 사업"이라고 부른다.
농촌지원 물량작전으론 한계
이같은 물량 작전으로 농촌도 많이 변했다. 경지정리나 기계화 사업 등 적어도 외형적으로는 적잖은 변화가 나타났다. 갑자기 많은 돈을 투입하자니 정책혼선과 중복투자 등이 불거져 예산낭비라는 지적이 잇따를 정도. 농림부 농업정책과 김윤중 과장은 "그동안 투입한 재원으로 생산기반 등에서는 나름대로 성과를 보고 있지만 소프트웨어 부분은 성과가 금방 나타나지 않아 성과에 대해 말들이 많다"고 했다.
또 농림부 투자심사담당관실 강신복 사무관은 "그간 42조원을 들인 사업에서 적잖은 문제가 나타나, 사업 규정을 강화해 지원 자격을 까다롭게 하고 있다"며, "중복투자를 피하고 기능별로 투자되게 하기 위해 농특세 사업을 45조원 사업에 편입시키기도 했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단군 이래 최대 지원사업으로 우리 농업과 농촌은 과연 경쟁력을 갖춰가고 있는가? 외국 소가 수입돼도 끄떡 없고, 외국 쌀이 들어 와도 여전히 우리 들녘에는 앞으로도 벼가 누런 이삭을 출렁일 것인가? 아니면 농민은 떠나고 들은 황무지로 변하고 말 것인가? 그것이 지금 짚어야 할 과제일 것이다.
정인열기자 oxen@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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