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유라시아 대륙을 달린다 (22)

◈우즈베키스탄-사마르칸트

타슈켄트에서 철길로 300여㎞ 떨어진 사마르칸트는 흔히 '시간이 멈춰버린 도시'라 불린다.

푸른색 타일로 장식된 돔을 가진 수많은 모스크(이슬람 사원)가 도시 전체를 화려하게 꾸며놓고 있지만 서민들이 사는 집은 여전히 흙으로 지어지고, 비록 스카프가 차도르를 대신했지만 얼굴을 반쯤가린 여인들도 종종 눈에 띈다. 양의 엉덩이에 붙은 지방 덩어리를 무 썰 듯 사각으로 잘라 날 것으로 먹는 식습관 역시 옛 모습 그대로다.

특히 묘지문화는 우리와 너무 다르다.혐오시설이 아니라 선조가 안식하는 성스러운 장소로 받들어지고 있다.사마르칸트인은 어려운 일이 닥치면 교회나 절을 찾는 것이 아니라 바로 이 묘지로 달려가 무릎을 꿇는다. 그 중에서도 아무르 티무르의 묘가 있는 '귀르 에미르'는 사마르칸트인들에겐 영혼의 안식처로,천국의 통로로 인식되고 있다. 그래서 출입구 우물가에선 지금도 양을 잡아 그 피를 뿌리고 티무르묘에 이르는 100여개의 계단을 오르내리며 그 수를 세어 두개가 일치하면 큰 행운이 따른다고 믿는 사람이 많다.

티무르는 14세기 징기스칸의 말발굽에 폐허가 된 지금의 자리에 사마르칸트를 세운 인물로 신과 같은 존재다.그의 묘에 가까워질수록 천국의 문은 더욱 활짝 열린다고 사마르칸트인들은 믿고 있다.그래서 집을 팔아서라도 가까운 자리에 위치한 묘지를 구하려 든다.이미 '명당'들은 부자와 권력자가 독차지했지만.

그러나 이곳 사마르칸트에서 취재팀을 가장 놀라게 한 것은 사람들의 이빨이었다.한 두개도 아니고 아래 위 이빨 거의 전부를 황금으로 씌워놓았는데,치료를 위해서가 아니라 일종의 풍습이자 부의 상징처럼 보였다.

사마르칸트역 광장 한켠에서 과일과 음료 등을 파는 젊은 여인도 그랬고,사마르칸트역 구랴모우 굴람 부역장은 웃을 때마다 누런 황금이빨을 유난히 드러냈다.고대 이집트의 왕 투탕카문의 황금마스크를 연상케 할 정도였다. 그런데 사마르칸트가 외국인에 대해선 의외로 배타적이라고 현지 고려인들은 말한다.타지크족 우즈벡족 이란족 아랍족 독일족 등 무려 96개에 달하는 소수민족이 뒤섞여 살고 있는데 왜 그런지 그 이유가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한번 들렀다 사라지고 마는 관광객으로서야 전혀 문제될 게 없지만 이곳에 진출해 사업을 하자면 상황이 달라진다는 것이었다.

법률상 조세 등에 혜택이 없음은 물론이고 인식 자체가 외국인에 대해 상당한 경계심을 갖고 있다고 했다.

구체적 이유를 알 수 없었지만,알렉산더 대왕이나 아랍족 혹은 징기스칸 등 수많은 이민족에 의해 짓밟힌 가슴 아픈 상처가 그들의 의식속에 잠재해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실제로 외국 간판은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다. 그런데 뜻밖에 많은 식당에서 한국의 김치와 국수. 보신탕을 팔고 있었다.이 중에서도 시원한 육수에 말아 먹는 국수는 그 맛이 우리 입맛에 딱 맞을 뿐 아니라 이름까지도 '국시'라 불리고 있었다.알고 보니 이들 음식은 1937년 스탈린에 의해 우즈베키스탄으로 강제이주된 고려인들이 전파한 것이었다.

사마르칸트는 과거 소고드인들이 대상을 하며 일으킨 국제무역도시로 중앙아시아 실크로드의 중심지였다.지금의 철도는 그 노선이 과거의 실크로드와 상당부분 일치한다. 사마르칸트역을 중심으로 부하라~투르크메니스탄 차르조우를 잇는 노선과 카르키우바크~카자흐스탄 우아시즈로 연결되는 2개의 노선축이 옛 실크로드의 발자취를 상당부분 좇고 있다.

다만 열차의 속도는 화물 40㎞, 여객 65㎞로 더디기 그지없다.열차도 몹시 낡아 냉난방이 안되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비가 오면 천장에서 물줄기가 쏟아진다. 그래도 철도는 물류의 주역이라 하루 4천500~5천t의 화물이 사마르칸트역을 통과한다는게 구랴모우 부역장의 설명이다.

글:김기진기자

사진:김영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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