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개인은 물론이고 가문의 영광인 중책을 맡겨주시고, 여러 가지로 경력이 부족한 저를 파격적으로 발탁해주신 대통령님의 태산같은 성은에 진심으로 감사 드립니다. 꿈만 같고 실감이 나지 않습니다".
이것이 법무장관이란 엄청난 자리에 임명된 분이 남겼다는 문건의 앞머리라고 한다. 비록 43시간짜리 장관을 지냈지만 죽은 다음에 그 자손들이 그의 신주에 '현고학생부군(顯考學生府君神位)'라고 쓰지 않게 되었으니 어찌 되었든 그로서는 소원 성취한 셈이렷다.
또한 여당의 사무총장이란 분은 이런 말씀을 하셨다고 한다.
"국민 모두가 국가원수인 대통령에게 충성하는 것은 당연하다".
같은 시기에 역시 여당의 한 축이라는 자민련에서는 '목숨 바쳐 JP에게 충성하겠다'는 결의를 다지는 모임을 가졌다고 한다.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이 정도의 인물들이 우리의 국정을 전담하고 이 정도의 인물들이 나라의 일을 좌지우지하고 있다. 자나깨나 눈과 귀를 '태산 같은 성은'을 내려주실 분만을 향해서 열어놓고 지내는 이런 사람들의 눈에 나라와 국민이 보일 것이며, 이들의 귀에 백성의 소리가 들릴 것인가. 대한민국에 민주주의가 실현되는 것은 쓰레기통에 장미가 피어나는 것보다 더 어렵다던 말이 더욱 실감난다'임 향한 일편단심'과 '각하 시원하시겠습니다'의 망령(亡靈)이 몇 백년이 흘러가도 돌아갈 줄을 모르고 여전히 구천을 맴돌고, 이런 망령들의 후손이 바로 우리들이라는 이 절망감을 어디에서 위로를 받아야 하는가.
진(秦)나라 임금을 도와서 여섯 나라를 통합하고 그 임금을 시황제로 올려 모신 이사(李斯)는 정승이 되어서 황제 부럽지 않은 권력을 손에 쥐었다. 그러나 그는 영화가 극에 달하면 쇠한다는 막연한 불안감을 떨쳐 버릴 수 없어서 고향 상채(上蔡)로 돌아가 꿩 잡는 매로 사냥하는 재미를 꿈꾸었으나 권력의 맛에 취해서 그것을 결행하지 못하고 우물쭈물하다가 결국 참소 끝에 극형을 받고 죽었다. 죽는 자리에서 그는 아들을 보고 "너와 함께 사냥개를 끌고 팔에는 꽹 잡는 매를 얹고 상채의 동쪽 문으로 나아가고 싶었는데 이제는 할 수 없게 되었구나" 하고 탄식했다.
육기(陸機)는 형장에서 목이 잘리면서 고향 화정(華亭)에서 듣던 학의 울음소리를 듣고 싶어했으나 그것은 이미 이룰 수 없는 소원이었다. 권세에 취해서 어물어물하다가 몸과 이름을 함께 망하게 만들었으니 권력이란 이렇게 무섭고 두려운 존재이다.
반면 오(吳) 땅 사람, 장한(張翰)만은 삶의 뜻을 잘 알았다. 그는 한창 잘 나가던 때 가을 바람에 문득 송강에서 잡아먹던 농어회 맛이 생각나서 그 길로 벼슬을 버리고 고향 강동으로 돌아갔다. 그는 벼슬은 말할 것도 없고 죽은 뒤의 이름조차 염두에 두지 않았다.
사람들이 왜 돌아가느냐 물었더니 "내 어찌 천리 밖에서 벼슬에 얽매어 살겠는가' 라고 반문했고, 사람들이 '죽은 뒤의 이름은 생각지 않는가"라고 묻자 그는 "내 죽은 뒤의 이름이 생전의 한 잔 술 보다 못하다"라고 담담한 어조로 대답했다.
이 땅에는 권세와 이름에 연연하여 죽을 때가 벌써 지난 나이면서도 돌아가 누울 생각을 못하고 여전히 이 부질없는 것들의 끈을 붙잡고 허우적거리는 추한 늙은이들이 너무 많다. 고향으로 돌아가 한 잔 술을 앞에 두고 이백(李白)의 시구(詩句)로 벗할 인물이 그립고 보고 싶다.
'육기의 뛰어난 재주도 제 몸 보전 못하였으며
이사는 진작 벼슬을 버리고 쉬지 못했던 것을 한탄했도다
화정의 학 울음소리 늘 들을 수 없었으니
상채의 푸른 매야 말하여 무엇하랴
그대는 듣지 못하였는가
오 땅의 장한은 삶에 달통한 사람이어서
가을바람에 문득 강동 생각하고 돌아갔음을
우선 살아있을 적에 한 잔의 술로 즐길지라
천년에 남을 이름
죽은 뒤에 무엇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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