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천시 청통면 치일리 국민방위군 징집 장정 희생자 묘지. 호국 보훈의 달이지만 찾아오는 유족 한 사람 없이 쓸쓸하다. 연고자는 물론, 죽은 자의 신원조차 확인되지 않고 있기 때문.
이곳에 묘원이 만들어진 것 자체가 비극적이다. 마을에 도로가 개설되면서 길 옆에 묻혀 있던 장정들의 유골을 수습해 야산 100여평에 작은 봉분을 만들고 일련번호가 붙은 비목을 만들었던 것은 1980년대 초. 97기나 되지만, 그 일을 맡아 한 것은 동네 노인회였을 뿐이다. 1995년부터나마 매년 음력 10월10일 묘지를 찾아 위령제를 지내는 것도 노인들.
하지만 70세가 넘은 노인들에겐 봉분을 관리하고 벌초를 하는 일도 벅찬 일. 제대로 관리되지 못하니 봉분은 대부분 허물어졌고, 무성한 잡초 속에 비목도 삭아버렸다. 자세히 살피지 않으면 묘역조차 찾기 힘들 지경. 작년에야 이같은 사실이 알려져 경주보훈지청, 군 관계자, 영천시의회 등이 현장조사를 벌이고 사망자 신원 파악과 사실 규명, 위령탑 건립, 묘역 조성 등을 논의했다. 강원도 정선군청은 9월18일 묘역에서 제사를 모시기도 했다.
그러나 그나마 그때 뿐. 징집 장정들의 묘역은 다시 잊혀져 가고, 관리와 위령제는 또다시 노인들의 몫으로 미뤄졌다.
현지 주민들에 따르면, 이 지역에 투입된 국민방위군 장정들은 강원도 정선군, 경기도, 충청도 등에서 징집된 청장년 500여명이었다. 1951년 11월부터 일년여간 은해사에 수용돼 군사교육을 받았다. 그 과정에서 굶주림.질병으로 100여명이 죽어 나갔고, 그 시신은 마을 주민들에 의해 여기저기 매장됐다.
"내가 14∼15살 때였지요. 뼈만 앙상하게 남은 장정들이 너무도 비참하게 죽어 나갔습니다. 처음에는 무덤에 이름을 적은 나무 팻말을 세웠으나 나중에는 그마저 없이 한 구덩이에 2~3구를 함께 묻어야 했지요". 이 동네 김성한(66)씨는 "나라에 희생한 사람들의 묘원 관리를 이렇게 방치해서 되겠느냐"고 안타까와 했다.
정선 출신으로 이곳에 수용됐다가 현역병으로 바뀌어 참전했다는 생존자 최종호(71·대구 도동)씨의 분노는 더 했다. "주먹밥 한 개로 하루를 떼우고 추운 겨울에도 이불 없이 가마니 위에서 잠을 잤습니다. 수용 장정 500여명 중 100여명이 몇달새 죽어나갈 정도로 처참했습니다. 희생자들의 신원만이라도 밝혀질 수 있도록 정부가 노력해야 합니다".
그러나 참전용사 유해 발굴작업 실무자인 육군본부 이용석 중령은 "참전하지 않은 국민방위군 장정들은 유해 발굴 대상에서 제외돼 있어 안타깝다"고 했다. 정선군청 최대옥 사회복지과장은 "당시 영천 희생자 중 다수가 정선 출신이라는 것은 증언만으로 확인될 뿐이어서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6.25가 끝난 지 반세기. 하지만 국민방위군 장정들의 묘원은 끝나지 않은 전쟁의 상처로 이같이 그대로 있을 뿐이다.
영천·서종일기자 jiseo@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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