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민족시인 상화탄생 100돌 봄은 왔는가…(7)상화 가계의 교육사업

우현서루(友弦書樓). 그것은 근대 향토교육의 요람이었다. 상화의 가문이 개설한 대구지역의 계몽교육과 항일 민족교육의 본산이었다. 상화가계의 교육사업은 바로 이 우현서루(友弦書樓)에서 비롯됐다.

우현서루는 상화의 백부인 소남(小南) 이일우(李一雨) 선생이 당시 대구부 팔운정 101 번지(현재 중구 수창동 101-11번지 대구은행 북성로지점) 일대에 세운 학숙이다.

1904년 급변하는 국내외 정세와 풍전등화의 위기에 선 조국의 현실을 보고 인재양성이 절실하다는 자각에 따라 설립한 것으로 1911년 일제가 폐쇄하기까지 지역 계몽운동의 중심지였다.

우현(友弦)이란 명칭은 중국 춘추시대의 고사를 인용한 것이다. '진(秦)나라가 정(鄭)나라를 기습하자 지략을 동원해 진의 공격을 물리치고 조국을 구한 정나라 상인 현고(弦高)의 구국정신을 벗(友)으로 삼는다'는 뜻이 담겨있다.

또 '활시위'란 '弦'자의 의미를 감안할 때 나라를 구하기 위해서는 문무(文武)를 겸비해야 한다는 뜻이 내포됐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중국군 장군으로 독립운동에 투신했던 이상정 장군의 족적, 교남학교에 권투부 창설을 주도했던 상화의 행적, 이상백의 독보적인 체육계 경력 등을 봐도 그렇다.

아무튼 우현서루를 통해 일본 제국주의 침략에 맞서 이땅의 '현고'가 되고자 했던 상화의 조부 금남 이동진공과 백부 소남 이일우 선생의 나라와 겨레사랑을 알고도 남을것 같다. 수천석의 살림을 일구고 집안을 명문가로 일으켜 세운 동진공의 '우현정신'을 받들어 소남 선생이 가산을 털어 학숙을 건립했던 것이다.

우현서루는 중국 등지에서 수입한 만수천권의 서적을 구비한 가운데 장지연·장지필 등 숱한 항일지사와 선비들에게 학문과 숙식의 장을 제공했다고 한다. 일본 이중교(二重橋) 폭탄사건의 김지섭 의사도 바로 이 우현서류의 출신이다. 그때 우현서루에서 소장했던 서적 중 일부분인 '사부총관'(중화민국 18년 상해 상무인서관 영인본) 등 3천937권은 후손의 기증으로 경북대 도서관〈사진〉에 보관하고 있으나 나머지는 일제가 강탈해 갔거나 유실됐다. 한글서적은 대구 이천동의 고서점에 있었으나 서점주의 사망과 함께 행방이 묘연해졌다.

상화의 백부는 당시 3천여석의 부호였지만 대구사회에서 명망이 높았다. 소작인들에게 소작료를 낮추고 그들을 후대했던 것으로 전한다. 평생 지조를 지켜 일제의 관선 도의원 강요에 불응했으며, 중의원 참의도 거절했다. 칼바람 세월에도 우현정신을 저버리지 않았던 것이다.

상화의 정신적 뿌리는 바로 조부와 백부 그리고 우현서루였다. 우현서루의 정신과 학풍은 교남학교와 대륜중학교로 이어지며 대구 근대문명교육의 전당이 됐던 것. 상화가 1930년대 후반 교육·문화사업에 투신한 것도 그래서 결코 우연이 아니다. 이 성수(74) 전 대륜고 교장은 "1940년 대륜중학 탄생에는 학교재단을 세우기 위한 상화 선생의 고심과 노력이 숨어있다"며 "대륜중학의 교가 또한 선생의 작품이고 보면 교육에 대한 그의 남다른 열정을 알고도 남는다"고 말했다.

'대륜 60년사'에도 "선생은 본교와 특별한 인연이 있으니 교남학교의 교사이던 우현서루의 주인 이일우 선생은 선생의 백부이시다…. 선생은 현 본교 교가를 작사했으며 교과시간 이외에도 민족자주독립론·시론 등을 강의하였고…. 교남학교에서 대륜학교로의 실현 이면에도 숨은 공로가 많았다…"고 적고 있다.

상화가계의 교육사업 정신은 당연히 상화의 다른 형제들에게도 계승됐다. 형 상정 장군은 일본 유학을 마치고 돌아와 오산·경신·계성·신명학교 등에서 학생들의 민족정신을 고취시켰고, 1923년 중국으로 망명한 이후에도 북만주에서 2년간 민족교육을 통한 항일독립운동에 투신한 바 있다.

'근대 대구·경북 49인'(혜안·1999)이란 책에는 "이상백은 한국 올림픽위원회 위원과 학술원 회원 등을 역임한 우리나라 체육계와 사회학계의 태두였고, 이상오도 우리나라 수렵계에 전문적 지식을 처음으로 체계화 한 저작을 남겼다"고 기록하고 있다. 우현정신의 계승이 아니고 무엇인가.

근대 계몽교육에서 항일민족교육으로 이어져 온 상화가계의 교육사업 정신, 그것을 자주적인 통일국가를 염원하는 분단조국의 시대정신으로 승화시켜야 할 책무는 이제 우리의 몫으로 남았다.

조향래기자 swordjo@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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