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청소년문화센터 원장 안미향씨

대구청소년문화센터 '우리세상'의 안미향(32) 원장. 어른들에겐 낯설지만 대구의 중고등학생들 사이에는 어설픈 연예인보다 더 잘 알려진 얼굴이다. 그녀의 일은 입시에 지치고, 컴퓨터와의 대화에 익숙한 아이들에게 '옆 사람에게 말 거는 법'을 가르치는 것.

안씨는 대학 신입생이던 89년 자원봉사로 시작, 90년 독지가의 도움으로 여러 선배들과 함께 작은 청소년 도서관을 열었다. 그러나 도서관은 얼마 지나지 않아 폐관됐다. 당시만해도 대학생 주최 모임은 정치적 혐의를 받기 일쑤였던 때. 함께 참여했던 선후배들은 공장으로, 공사판으로 흩어져 돈을 벌었고 96년 지금의 대구청소년문화센터(우리세상)를 설립했다.

'우리 세상'은 청소년 문화행사와 각종 동아리 활동, 학교 교육 지원 등 프로그램을 가졌다. 안씨와 이 문화센터 일꾼(상근4명, 봉사10명)들의 역할은 청소년 문화활동 전반에 관한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집행하는 것. 내부 행사가 없는 때에는 청소년들에게 문화센터 공간을 대여하기도 한다.

안미향씨를 비롯한 '우리세상' 일꾼들은 다양한 기술을 가졌다. 필요에 따라 주유원, 농사꾼, 봉제공장 시다, 공사판 일꾼 등 자유자재로 변신한다. 때때로 길에서 광고지 돌리는 아르바이트도 마다않는다. '우리세상'이 비영리 단체인데다 연간 수십 여건의 각종 문화행사로 비용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후원금도 있고 몇 가지 수익 사업도 펼치지만 비용은 턱없이 부족하다.

어렵기는 설립당시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지만 속사정은 조금 다르다. 초창기엔 제대로 된 프로그램을 만들기 어려웠고 지금은 일꾼 기근에 시달린다. 행사는 자꾸만 늘어가는데 일꾼도 비용도 턱없이 부족하다. 요즘은 학교 선생님들이 방과 후 특별 활동 공간으로 추천도 종종 하는 편이어서 일은 더 많이 늘었다.

안미향씨는 학업, 가족, 취직, 결혼 등 많고 많은 보통 사람들의 고민거리를 밀쳐두고 어째서 자신과는 별 무관한 청소년들에게 매달렸을까. 미인이라 '결혼하자'고 졸라대는 남자도 많았을 법했다.

"갈등 많이 했어요. 그렇지만 결국 이 길을 택했고, 만족합니다" 웬만큼 나이도 찼는데 이제 제것도 좀 챙길 때가 되지 않았느냐는 통속적인 충고를 그녀는 웃음으로 받는다. 그런 말쯤엔 이제 흔들리고 말고 할 것도 없다는 식이다.

"요즘 청소년들은 부조리한 사물이나 사건과 맞서는 걸 회피하는 경향이 있어요. 그저 재미있고 편하며 자신에게 이익이 되면 그만이라는 식이지요" 안씨는 청소년들의 세상에서 입시와 컴퓨터를 조금 끄집어내고 대신 공동체 생활의 가치를 조금 들여놓고 싶어한다. 지난 9일과 10일엔 청소년들을 이끌고 가뭄으로 말라버린 땅 경북 의성군으로 봉사활동을 다녀왔다. '너희 집 목욕탕에 콸콸 쏟아지는 수돗물이 세상의 전부는 아니다'라고 말해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조두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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