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삶-대구 서변동 총각 농사꾼 차중환씨

'무태'로 더 많이 알려진 대구광역시 북구 서변동. 마을 앞으로 난 도로를 승용차들이 쉴새 없이 달려왔다가 멀어지는 곳. 지리적으로는 대도시의 한쪽 귀퉁이에 해당하지만 사는 방식과 풍경은 영락없는 농촌이다.

차중환(37)씨는 차보다 쟁기에 익숙하고 연탄불보다 장작불에 더 익숙한 이곳 주민이다. 승용차가 달리는 길옆에 있는 차씨의 집 담엔 지난 겨울에 때고 남은 장작이 아직 쌓여 있다.

그는 몇 안되는 이 마을의 젊은 농사꾼이다. 팔공산으로 이어지는 서변동의 찻길 옆에서 30년 이상을 살았다. 7남매 중 막내. 형과 누나들은 결혼해 뿔뿔이 흩어졌다. 그래서 차씨는 70세를 훌쩍 넘긴 노부모와 셋이 산다. 그러나 그는 노부모를 모시고 산다기보다 부모에 기대어 사는 사람이다. 시간이 부모님을 데려가 버리면 그는 기댈 곳을 잃고 넘어질는지도 모른다.

차씨는 지능이 보통 사람보다 떨어진다. 시키는 일을 기계처럼 반복할 뿐 혼자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다. 묻는 말에 '예, 아니오, 그렇습니다, 모릅니다' 라고 짤막하게 대답할 뿐이다. 대답을 마치면 곧장 자기만의 세상으로 숨어버린다. 먼저 질문을 던지는 법도 없다. 그렇다고 위험인물은 아닐까 걱정할 필요는 없다. 차씨에게는 엉뚱한 사고를 칠 여력이 없기 때문이다.

차중환씨의 삶은 단거리선수 같은 현대인들의 숨찬 생활방식에서 몇 걸음 물러서 있다. 그에게서 21세기 사회의 키워드인 시각적 이미지를 찾기는 어렵다. 차씨는 O양 비디오도, 인터넷도, 이영자의 살빼기 파문도 모른다. 지펠 냉장고는 고사하고 텔레비전도, 라디오도, 뼈로 가는 칼슘우유도 모른다. 첨단이라는 수식어가 붙은 그 어떤 문명의 이기도, 국제라고 이름붙은 어떤 사건도 그에게는 허상에 불과할 뿐이다. 차씨에겐 '무태'라고 알려진 서변동의 논밭과 늙은 부모님이 세상의 전부이다.

생활동선도 간단하다. 날이 밝으면 잠에서 깨고 자리에서 일어나면 논밭으로 나선다. 뙤약볕 속에서 소대신 쟁기를 끌어 마른땅을 갈아엎고 해가 지면 집으로 돌아온다. 저녁상을 물리면 이내 잠드는 사람이다.

"쟁기 끄는 일이 힘들지 않아요?" 굳은 땅을 오직 몸뚱이 힘으로만 갈아엎는 그에게 말을 걸었다.

"힘 안 듭니다" 그는 짧게 대답할 뿐 더 이상의 말잇기를 거부하고 하던 일로 돌아간다. 올해는 비가 오지 않아 참깨씨를 세 번이나 뿌려야 했고 모내기를 포기해야 했지만 차씨는 불평할 줄 모른다. 비가 오지 않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막연히 믿는 사람이다.

차중환씨는 초등학교 1학년을 겨우 마쳤을 뿐 그 후 학교 언저리엔 얼씬도 하지 않았다. 선생님의 말씀을 제대로 알아들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는 모르는 것이 참 많은 사람이다. 팔공산 언저리에서 30년 이상을 살아왔지만 팔공산 속에 어떤 시설이 들어섰는지 모른다. 자신의 집 앞으로 난 도로 위를 쌩쌩 달려가는 그 많은 차들이 어디로 향하는지 궁금해하지도 않는다.

"이놈 장가나 보내고 죽었으면 좋겠소". 차씨의 늙은 부모는 시종 혼자 남게 될 자식걱정이었다. 시간이 늙은 부모를 데려가면 차씨는 이 마른땅을 홀로 걸어야 한다. 어린 아이 같은 차씨에겐 '사막을 건너는 법'을 가르쳐 줄 안내인이 필요하다. 형과 누나들이 있지만 일일이 길을 가르쳐 주기엔 차씨는 너무 멀리 뒤처진 채 걷고 있다. 차씨의 아버지는 착한 며느리가 생긴다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겠다고 덧붙였다.

'정글의 법칙'과 더불어 세상의 변방으로 쫓겨난 많은 사람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에 따르면 이 땅에는 100만명이 훨씬 넘는 장애인들이 산다. 그 많은 사람들이 쉽게 눈에 띄지 않는 이유는 그들이 숨어살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별 생각 없이 장애인을 '은둔자'로 몰아세우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조두진기자 earful@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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