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일 내린 비로 120일간에 걸쳤던 '100년만의 가뭄'이 끝났다. 그러나 진정한 가뭄 대책이 수립돼야 하는 것은 바로 지금부터. 이번 사태를 교훈 삼아 다시는 온 나라가 휘둘리는 일이 없어야 할 것이다. 가뭄의 역사를 정리해 보자.
◇미약한 인간의 힘=조선시대 482년 동안 가뭄은 5년에 한번꼴로 모두 89회나 농민들을 위협했다. 대기근도 5, 6차례 있었다. 당시의 주된 가뭄 대책은 하천에 둑을 막아 물을 끌어 오는 천방(川防) 사업이 고작이었다. 산 가까이에는 제(堤)를 뒀고 들에는 보(洑)를 만들었으며, 바다 부근에는 언(堰)으로 대비했다.
광복 뒤 1950년대까지도 가뭄을 불가항력의 천재로 간주하는 성향이 짙었다. 그때는 외국의 원조에 의지해 식량을 공급하던 시기. 가뭄이 들면 피해농가에 구호품을 주거나 벼 대신 메밀 등을 대파하는 것이 주된 대응책이었다.
기상관측소가 만들어져 강수량이 현대적으로 관측되기 시작한 것은 1905년. 그 후 나타난 큰 가뭄은 35차례 정도였다. 경북에서도 12차례나 한발이 나타났다.
◇박 대통령 전기를 만들다=그러나 1960년대 들어 박정희 대통령이 등장하면서 대응이 달라졌다.
경북도청에 전국 유일하게 한 권 남아 있는 친필 용수개발 계획 서문에서 박 대통령은 "오랜 세월 천재 앞에 내버려 둔 농토는 원시상태인 채 황폐화 됐고 재해와 가난을 더불어 낳았다. 수천년래 한발에 무방책, 농사를 지어 온 서글프고 부끄러운 과거를 장래에까지 연장시킬 수는 없다. 우리까지 또다시 후손들로부터 무능한 조상이라 불려져서는 안된다. 오늘 우리가 고되고 힘들어도 후손들이 '가뭄 없는 농토'를 물려 받아 잘 살게 될 그날을 위해… 물 걱정 없는 강산을 이루는 것이 나의 필생의 소원이다"고 했다.
이런 각오로 나서다 보니 들샘 파기뿐 아니라 호미 모내기 방법까지 동원됐다. 지하수로도 점차 눈이 돌려졌다. 대일 청구권 자금이 들어오자 양수기 및 지하수 뚫는 장비들이 도입되기 시작했다. 가뭄 대책이 점차 장비화되는 물꼬를 튼 것.
박 대통령은 1968년엔 농업용수 개발 종합 계획을 세우기까지 했다. 70년대 들어서는 새마을운동에 잇대어 가뭄 대책이 더욱 적극화됐다. 하천 물을 다단계 양수해 높은 곳의 저수지에 퍼 넣는 '저수지 물 가두기'도 이때 처음으로 경북에서 시도됐다.
지난 30년 동안 치수와 농업기반 분야에 종사해 온 경북도청 이승재 농업기반과장은 "천재로 여겼던 가뭄을 이기려는 노력에 불을 댕긴 사람이 바로 박정희 전 대통령"이라고 말했다.
◇그 이후, 상황 변화=1980년대에는 자금 지원 규모가 커지면서 지하수 개발이 상례화됐다. 북한 땅굴 발견에 쓰였던 암반굴착 방법이 처음으로 가뭄 극복에 활용되기 시작했다. 수맥 조사가 활발해진 것도 그 이후 일.
하지만 1990년대 들면서는 불가항력적인 지구 변화가 닥쳤다. 엘니뇨.랴니냐 현상으로 세계적으로 기상이변이 잇따랐다. 드디어 우리나라도 심각한 물 부족 상황을 깨닫기 시작했다.
경북에서는 1994년에 120일간의 가뭄이 있었고, 1995년에는 208일간 대가뭄이 계속되기도 했다. 그러면서 경주.영천.포항 등 동남부에 피해가 커 이 지역에 집중적으로 가뭄 방지 투자가 이뤄졌다.
그러나 21세기 들면서, 경북지역 가뭄은 동남부에서 북부로 옮겨 가고 있다. 그 사이 많은 수리시설을 갖춘 덕분에 동남부가 어느 정도 벗어난 대신 북부가 희생양이 된 것. 최근 들어 하천 고갈 현상이 자주 발생하고 있다. 북부는 산림이 우거지고 골이 깊어 하천물이 충분, 그 사이 수리시설 투자가 상대적으로 소홀히 됐던 것.
경북도청 이 과장은 "이제 치수(治水)에서 이수(利水)로 정책을 바꿔야 할 때"라고 했다. 방어적인 치수방재에 머물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물을 이롭게 활용할지 궁리하고 투자해야 한다는 이야기였다.
정인열기자 oxen@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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