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홍경호 세상읽기-상류사회

가훈(家訓)가운데에서 안씨(顔氏)가훈과 함께 세상에 가장 널리 알려진 류씨(柳氏) 가훈은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사항을 특히 강조한다.

"안일만을 구하지 말라. 마음을 항상 맑고 깨끗하게 가져라. 자신의 이익만을 구하지 말라. 선비의 도리를 모르거나 옛 성현들이 만들어 놓은 올바른 도리를 싫어해서는 안된다. 세상의 옳고 그름을 말하기 좋아해서는 안된다. 아는 것이 없으면서 다른 사람의 학식을 미워하지 말라. 나보다 나은 사람을 싫어하거나 아첨하는 사람을 좋아해서는 안 된다. 쓸데없는 얘기를 하기 좋아하지 말라. 타인의 선행을 본받고 타인의 악행을 남에게 전하지 말라. 안일하고 방탕한 생활에 빠져서는 안된다. 권문세가에 빌붙어 벼슬자리를 구하려 말고 학문과 덕행을 닦도록 애써라".이 가훈은 무엇보다 충효와 근검절약을 강조하면서 명문과 귀족가문을 이룩하기는 하늘에 오르는 것보다 어렵지만 그것을 잃기는 깃털을 불사르는 것처럼 쉽다고 했다. 이 가훈은 이런 말로 끝맺음을 하고 있다.

"명문과 귀족들을 살펴보니 그 조상들이 나라에 충성하고 부모에게 효도하며 부지런히 일하고 검소한 생활로 절약하여 명문과 귀족 집안을 이룩했음을 알겠노라. 그런데 그 집안이 망할 때는 자손들이 어리석고 경솔하고 사치하고 방탕한 생활을 하고 태도가 거만하여 조상이 쌓아올린 가문을 엎어버리고 명예를 땅에 떨어지게 한다. 명문과 귀족을 이룩하기는 하늘에 오르는 것과 같이 어렵고 집안을 엎어버리고 명예가 땅에 떨어지게 하는 것은 깃털을 불사르는 것처럼 쉽다. 이를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니 너희들은 마땅히 이런 사실을 마음에 깊이 새겨 잘못됨이 없기를 바랄 뿐이다".

어떤 나라든 신분상승을 꾀하여 그것을 이룩하기도 어렵지만 그것을 지키기는 더욱 어렵다. 우리나라의 경우는 어떠했던가. 양반 상놈이라는 반상(班常)의 윤리가 몇 백년을 이어져 내려오다가 갑자기 무너졌다. 출신성분에 따라 인간의 운명이 달라지는 이 나쁜 풍속은 마땅히 없어져야 했으나 그러나 그 자리를 채울 다른 윤리와 사회적 규범이 뒤따르지 못했고, 또한 미처 그럴만한 여유도 없었다.

그 대신에 돈이라는 가장 저급한 척도가 신분의 차이를 매기게 되었다. 이것이 우리의 더 없는 불행이었다. 어떤 직업에 종사하든 돈만 벌면 된다. 이쯤은 괜찮다. 그리고 그것은 직업의 귀천을 타파하는 것이기에 오히려 권장할만한 풍조였으나 문제는 부를 축적하는 방법과 수단이 도외시되었다는 데에 있다. 어떤 직업에 종사하든 부를 축적하는 과정과 방법은 정당해야 한다. 그런데 우리는 그것을 문제삼지 않았다. 이렇게 해서 우리의 가장 저급한 졸부 계급이 생겨났다.

내가 '쫄병'으로 군대생활을 했으니 나의 자식이 군대에 들어간다면 하사관 정도가 좋다. 그 자식의 자식이 장교가 되고, 그리고 몇 대 뒤에 그 집안에서 장군 한 명쯤 배출된다면 크게 다행한 일이다. 물론 이 과정에서 적어도 몇 명쯤의 전사자는 생겨나기 마련이다. 참된 무가(武家)가 생겨나는 과정은 마땅히 이러해야 한다.

아버지를 일찍 잃어 고아나 다름없는 사람이 삼촌의 손에 커서 육군사관학교에 진학해서 장교가 되었다. 그것만으로도 엄청난 신분상승이었다. 그쯤에서 멈추어야 했으나 그러나 불행히도 그는 장군이 되고 싶어해서 그렇게 되었고, 거기에서도 멈추지 않았다. 그는 대통령이 되고 싶어했고, 그것이 되기 위해서 많은 일들을 구부리고 많은 사람을 죽였다. 그렇게 해서 그는 결국 가장 귀한 자리에 올랐다. 그는 그것으로도 만족하지 못하고 부자들과 혼맥(婚脈)을 맺어서 자자손손 그 부귀를 누리게 하려고 했다. 그렇게 해놓고도 안심이 안되어 그는 자리를 이용해서 스스로 엄청난 재산까지 축적했다.

우리의 무가는 이런 식으로 생겨났다. 나라를 도둑질해서 신분을 바꾸려는 자, 돈으로 신분을 바꾸려는 자, 헛된 이름으로 신분을 바꾸려는 자, 이런 무리들이 끼리끼리 자식들을 주고받으며 혼맥을 형성하면서 자자손손 영광을 누리려 한다. 이것이 우리의 상류 사회다. 이렇게 해서 생겨난 상류층을 대중이 인정할 것이며 존경할 것인가. 존경 받을만한 상류층이 없다는 것은 위나 아래를 위해서나 불행이 아닐 수 없다.(한양대교수·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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