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방에서 한 산문집의 제목과 함께 겉장의 글귀가 가슴에 와 닿아 그 책을 집어들었다. "때때로 이 자리에 서 있는 자신을 바라보면서 묻곤 했습니다. 내가 정말로 원했던 것이 이것이었나. 그토록 많은 것을 뒤로 미루고, 옆으로 밀어놓고, 그도 아니면 훗날 어디선가 만날 것을 약속하고 여기까지 뛰어 왔던 것인가. 그때마다 나는 고개를 저으며 잊혀진 나를 그리워했습니다. 어쩌면 나를 찾아간다고 믿었던 그 긴 여정은 끊임없이 나로부터 떠나는 나그네길이었을지도 모릅니다".
'단순하고 조금 느리게'라는 그 산문집은 '복잡하고 항상 빠르게' 내달리고 있는 나의 일상과 자아(自我)를 되돌아보게 했고, 경쟁논리에 지배당하지 않고 물질에 집착하지 않는 삶의 이야기와 주제 또한 내내 상념에 머물게 하였다.
책에 나오는 '느림'은 이러했다. 바쁘게 돌아가는 현대 사회에서 스스로 느림의 삶을 선택한 젊은 부부의 이야기였다. 사회적 성공과 명예를 향해 달리기만 하는 주류행(主流行)의 특급열차에서 내려 그들은 느림의 행복과 내면의 평화를 위해 필요한 만큼의 물질만을 소유하기로 하는 가난한 삶을 실천하며 여유로운 삶을 추구한다.
'낭만'은 아찔한 속도의 시대 속에서도 어수룩하게 인생을 살고자 한 송이의 붉은 장미꽃을 가슴에 달고는 60년대식 '낭만파'를 선언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였다. 개인주의가 팽배한 우리사회를 인간미 넘치는 세상으로 만들고자 하는 이들의 낭만지향점은 그야말로 옛날 식 다방의 분위기이다. '따지지 않는다. 차라리 내가 손해본다. 지갑을 보고 친구를 사귀지 않는다…'
2002년 광주비엔날레 조직위는 전시 주제를 '멈춤(止)'으로 정했다고 한다. 현대사회의 숨가쁘고 다이내믹한 진보 앞에서 한발 쉬어 가는 성찰의 의미와 앞으로의 운동을 전제로 새로운 도약을 위한 움츠림의 의미로 해석할 수 있겠다.
그러나 지난 일주일간의 나의 생활은 조금 더 단순하고 조금 더 느리질 못했고, 낭만의 술잔을 기울일 마음의 여유가 없었고, 또한 앞날의 도약을 위해서 잠시 멈추어 설 수도 없었음에 우울한 날들이었다. 현대인에게 단순하고 조금 느리게 살기란 쉽지가 않은 모양이다.
건축가.경운대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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