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시와 함께 하는 오후

TV 속 사막을 빠져나온 전갈 한 마리가 두 마리가 세 마리가중공군 병사처럼 무수히 밥상 위로 기어오릅니다. 바닷게를 집으려던 스테인레스 젓가락이 덜덜덜덜 떨립니다. 사막의 왕국인 내 노래의 집게발도 고압선에 감전된 듯 덜덜덜덜 떨립니다.

먼 바다로 열린 길은 어디 있는지, 덜덜덜 떨리는 손가락으로 비밀번호를 눌러봅니다. 나는 오늘도 세끼분의 공복과 하루분의 권태를 자동지급 받습니다. 당신 때문입니다.

-강현국 '악어와 악어 사이'

의미가 명료하지 않은 시는 시인의 시적 전략이 개입된 시이다. 이 시도 그런 시가운데 하나이다. 불가해하고 무료한 표정을 짓고 있는 일상을 앞에두고 구체적이고 분명한 내용을 말할 수 있다는 게 어불성설이라고 이 시는 주장하고 있는 것 같다.

TV 속의 전갈 때문에 밥상 위의 바닷게를 집는 손이 덜덜 떨리듯이 현대사회는 사물의 본질보다는 이미지로 살아가는 것인지 모른다. 그 이미지에 휘둘린 삶이란 바로 권태에서 한 발짝도 물러나지 못한 가짜 삶인 것이다.

김용락〈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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