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김수군의 편지

난민지위 인정과 한국 망명을 요청한 탈북자 장길수군은 지난 5월 한국행을 희망하는 편지를 길수가족구명운동본부에 보내왔다.

다음은 길수군이 보낸 편지의 요약문이다.

"저는 1999년 1월11일 피눈물의 두만강을 건너 현재 중국땅에서 탈북자의 한사람으로 살아가고 있는 17살의 장길수입니다. 북한에서 먹고 살 길이 없어 자그마한 위장이나 하나 채우기 위해, 죽지 않고 살아남기 위해 탈북을 하였습니다. 사랑하는 아버지, 형님을 남겨둔채 떠난다는 말 한마디 없이 눈물을 흘리면서 집을 떠났습니다. 부모에 대한 생각보다는 굶주림의 고통이 나에게는 더 컸기 때문입니다. 굶주림이라는 것이 어찌나 무서운지 부모 자식을 갈라 이산가족을 만들어 놓고 마지막에는 사람까지 잡아먹는 비참한 현실을 빚어내더군요.

그래도 중국에 와 보니 북한보다는 많이 괜찮았습니다. 탈북자인 우리도 배는 채울 수 있었으니까요. 그러나 그것 못지 않게 우리에게는 정신적 심리적 고통과 불행이 뒤따랐습니다. 수시로 조여드는 감시와 조사 속에 1시간 1초를 숨쉬고 있다는것이 나로서는 감당하지 못할 정도로 힘들었습니다.(중략)

죽으면 죽은대로, 살면 살아있는대로 아무런 보장없이 하루살이처럼, 바람에 날려다니는 먼지처럼 살아야 하는 것이 탈북자들입니다. 중국 공안의 손에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는 우리들 운명이었지만 큰아버지, 큰어머니는 사랑의 품에 안아주셨고 내 마음 속에 삶의 희망을 심어주셨습니다. 그때부터 나 자신도 살아 숨쉬는 인간이라는 것을 의식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차츰 대한민국을 알게 되었고, 자유가 무엇인지 인권이 무엇인지 유엔 인권사무소가 무엇인지를 알게 되었습니다.(중략)

한 인간이 진정으로 인권을 보장받고 자유를 찾는다는 것이 얼마나 힘들고 귀한 것인지 지금에 와서야 진심으로 깨우치게 되었습니다… 꿈 속에 그리던 대한민국에 죽어서라고, 뼈라도 그 땅에 묻어달라고 하시던 우리 어머니가 중국 공안의 손에 잡혀 강제 송환되어 죄 아닌 죄로 정치범수용소에 갇혔습니다. 그곳에 들어가면 영영 나오지 못하는 지옥입니다. 한 인간을 비방하고 풀 캐어먹은 사실을, 자기자신이 살아 온 생활을 책으로 엮은 것이 무슨 죄입니까.(중략)

어머니의 말씀을 가슴에 새기고 이번 가는 길이 어떻게 될지는 모르지만 죽음보다 더 큰 난관이 앞을 가로막아도 끝까지 가렵니다. 이 지구 땅에 다시는 북한과 같은 비극이 일어나지 못하게 하기 위하여 저의 적은 힘이나마 이바지하고 열심히 노력하면서 살아가렵니다… 그리고 우리 큰아버지, 큰어머니 하시는 일을 도와주시고 협조하여 주신다면 정말로 감사하겠습니다. 선생님들의 구원의 손길을 기다리면서 자유의 그날을 그리며 슬픔을 힘과 용기로 바꾸면서 열심히 살아가겠습니다.

200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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