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방까지 성큼 불어닥친 '세계화'의 삭풍이 살을 엘 듯 매섭더니만 요즘은 어째 그 바람이 선선해 진 것 같다. 분명 그 바람의 강도가 약해지지는 않았을텐데 추위를 덜 타는 것은 웬일일까. 이곳 저곳을 둘러봐도 우리네 체질이 강해진 흔적은 별로 보이지 않는데도 체감온도가 떨어졌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그 의문은 의외로 쉽게 풀린다. 감동(感動)에서부터 실마리를 찾아보자.
지금 우리는 감동의 양극화 시대에 살고 있다. 마치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심화되는 것처럼 감동의 물결도 양극으로 치닫고 있다. 요즘 이벤트사들의 상품을 보면 깜짝 아이디어에 감동을 받는다. 신문광고, CF, 여행상품, 결혼이벤트, 오락프로 심지어 드라마에서도 신선한 충격을 종종 받는다. 한국영화에서도 색다른 감동을 받고 해외스포츠에서 우리 선수들의 활약에 뿌듯한 감동을 받는다.
그러나 정작 감동이 있어야 할 곳에는 감동이 없다. 먼저 정치판을 보자. 감동이라는 단어를 쓰기조차 민망하다. 그렇다고 요즘같은 상황에서 경제부문에서 감동받을 일은 없을 것이다. 감동이 원천이 돼야할 교육부문에서 감동이 사라진지는 오래됐고 의료부문에서, 공직부문에서는 감동보다 '힘'의 논리가 지배하고 있다. 말초적인 감동은 쏟아지고 있으나 이렇게 혼을 흔들어 줄 감동은 찾을 수가 없다. 감동이 없으니 돈과 권력에만 관심이 쏠린다. 돈과 권력은 당장은 편리할지 모르나 문제를 합리적 근원적으로 해결하는 데는 방해가 된다. 그렇다 보니 문제가 생기면 해결하려고 노력하기 보다 스스로 회피해버리려고 한다. 세계화의 바람이 더욱 거세지고 있는데도 추위를 덜타는 것은 신경이 마비된 '케세라 세라'족(族)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아테네가 민주정을 훌륭히 수행할 수 있었던 것은 당대의 정치가 페리클레스의 감동이 있었기 때문이다. 페르시아와의 전쟁에서 지친 국민을 페리클레스는 추도연설을 통해 아테네인의 혼을 일깨웠다. "우리의 정치체제는 민주주의라고 하는데 이는 권력이 소수의 손이 아니라 전국민의 손에서 나오는 것을 말합니다. 모든 사람은 법 앞에 평등합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을 책임있는 자리에 둘 때 가장 중요하게 고려되는 것은 그의 출신 성분이 아니라 능력입니다. 어떤 사람에게 국가에 봉사할 능력이 있다면, 가난 때문에 정치적으로 빛을 못보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가난을 부끄러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진짜 수치스러운 것은 그것으로부터 벗어나려고 노력을 하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와 다른 스파르타 인들은 아주 어려서부터 용기를 기르기 위해 힘든 훈련을 받습니다. 그러나 나는, 혹독한 훈련에 의해 국가가 주입한 용기보다는 자연스러운 용기로서 위험에 자발적으로 대처하는 아테네의 용기가 진정한 용기라고 생각합니다" 그는 이 감동을 바탕으로 아크로폴리스에 아테네의 상징인 파르테논 신전을 지었다. 감동은 바로 인간을 움직이는 열쇠다. 감동을 받은 사람은 목숨까지도 아끼지 않는다.
옛날 중국 위나라에 오기(吳起)라는 장군이 있었다. 그는 언제나 병사와 똑같은 옷을 입고 똑같은 음식을 먹었다. 잠자리도 따로 펴지 않았다. 한번은 병사 하나가 종기로 몹시 괴로워하는 것을 보고 종기의 고름을 입으로 빨아 주었다. 훗날 이 얘기를 전해들은 병사의 어머니는 아들의 고통을 덜어 준 장군의 호의를 고마워하기는 커녕 오히려 목놓아 우는 것이 아닌가. 그 이유를 물으니 어머니는 이렇게 대답했다. "바로 지난해 장군께서는 그 애 아버지의 종기를 빨아 주셨습니다. 그는 장군의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 끝까지 적에게 등을 보이지 않고 앞장서 싸우다 죽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제 아들의 종기마저 빨아 주셨다니 이제 그 아이의 운명은 결정된 것이나 다름 없습니다. 그래서 우는 것입니다".
감동은 진실이라는 열매를 먹고 자란다. 우리는 세계화에 부응하기 위해 문호를 할짝 열어놓았다. 그러나 정작 세계화의 패러다임인 경쟁력과 투명성은 후퇴하고 있다. 오히려 지난 시절보다 돈과 권력에 더욱 천착하고 있으니 감동의 물결은 기대하기 어려운 것일까.
감동없는 삶은 초점없는 삶과 같다. 우리 모두 몽유병자처럼 멍하니 도시를 돌아 다니고 있는 것은 아닐까. 죽을 먹더라도 감동이 있는 곳에서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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