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차로뿐인 지방·국도 "사람다닐 갓길 없다"

세계 12위 도로 보유국, 그러나 교통사고 사망율 세계 2위…. 대한민국이 처해 있는 현재의 교통 환경이다. 엄청난 돈이 계속해서 도로 건설에 투입되고 있지만 결과는 마찬가지. 그런 상황에는 보행자나 농기계 등은 전혀 배려하지 않은 농어촌 구간 국도·지방도의 기형화된 모습이 큰 몫을 하고 있다.

◇국도, 이제는 바꿔야 한다=가난을 벗어나는 데만도 급급해야 했던 우리 형편에서 이상만 주장할 수는 없는 일. 그러나 도로들도 어지간히 완성돼 가는 만큼, 이제는 국도의 형태를 '안전 위주'로 시급히 바꿔 나가야 한다는 요구가 강력하다.1980년대 말까지 우리의 국도 행정 중심은 2차로 개설. 그러다 1990년대 접어들면서 4차로 확장 공사가 주류를 이루게 됐다. 그러나 보행자에 관한 한 달라진 것은 아무 것도 없다. 특히 차 길 내는 데 급급해 보행자와 농기계를 무시해 또다른 피해를 부르고 있다. 안전보다는 차량 소통을 위주로 할 수밖에 없었던 경제적 한계 때문.

전국 어느 곳이나 별 차 없지만, 칠곡 지역 국도들에도 별도 통행로가 없어 보행자나 특히 자전거로 외출하는 노인들이 항상 불안해 하고 있다. 갓길 너비가 기껏 10cm도 안되는 곳이 대부분인 것. 왜관읍 석전동 김정식(71·농업)씨는 "도로변 잡풀을 걷어내는 등 조금 노력하면 1m 안팎의 갓길을 확보할 수 있을텐데도 당국은 안전을 무시하고 있다"고 했다.

상주대 토목공학과 이영재 교수는 "1970, 1980년대 IBRD(세계은행) 차관으로 건설된 농촌지역 도로들은 거의 차로 최소폭(3m)만 확보한 것이 고작"이라며, "농촌 구간에서는 주민 보행 및 농기계 통행을 위해 꼭 필요한 별도의 통행로가 없음으로 해서 피해가 심각하다"고 했다.

이때문에 경북도내에서는 작년 상반기에만도 국도·지방도에서 보행자 177명, 자전거 탄 사람 31명, 경운기 몰던 농민 15명 등 213명이 목숨을 잃었다. 경찰의 갖가지 노력 덕분에 올 상반기엔 사망자가 다소 줄긴 했지만, 그래도 희생자는 162명이나 됐다.

◇인식의 변화=그러다 1994년에 와서야 구조상의 문제점이 인정돼 '부체(附替)도로'라는 것을 만들도록 의무화 됐다. 통행인이나 농기계가 다닐 수 있도록 차로 밖에 별도의 통행로를 만들도록 한 것.

이와 관련해 2년 전 만들어진 건설부령(206호)에 따르면, 새로 만드는 농어촌 구간 국도 경우 시속 80km 이상이면 너비 2m(도시지역 1.5m), 60km 이상은 1.5m(도시 1m), 60km 이하는 1m(도시 75cm)의 별도 통행로를 확보해야 한다. 이에 따라 올해 완공될 대구·경북지역 국도 141km에도 마을·농로 연결 구간엔 29억원을 들여 부체도로를 함께 건설하고 있다.

규정은 또 기존 국도 경우 갓길을 돋워 부체도로로 활용토록 했다. 이에 따라 부산지방국토관리청도 갓길을 부체도로로 활용토록 하기 위해 주도로 높이와 같게 돋우는 공사를 진행하고 있다. 덕분에 칠곡 왜관~석적 사이 국도 67호선에선 갓길 확장 공사가 시행돼 별도 통행로가 크게 넓어졌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2천94.7km에 달하는 대구·경북지역 전체 국도를 보면 갖춰진 부체도로는 거의 없다시피 할 정도. 부산지방국토관리청 손종철 공사과장은 "부체도로 건설은 1994년에 시작됐지만 완공에 5년 이상 걸려 지금부터 완성된 부체도로 모습이 점차 드러나기 시작할 것"이라며, "앞으로 준공되는 모든 국도에는 부체도로가 반드시 붙어 있어 주민 통행과 농기계 운행 안전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했다.

◇도로 구조 왜 이리 후진적인가 =손 과장은 "우리는 자동차 문화가 1980년대 이후 본격화 되기 시작해 안전시설 투자가 이제야 진행되는 반면, 미국 등에선 1950년대부터 자동차 문화가 궤도에 올라 안전시설이 꾸준히 설치돼 오느라 우리와 사정이 달라졌다"고 했다.

안전도의 차이는 이루 말할 수 없지만 그 중 한 예는 도로의 경사도. 우리 국도는 노견과 높이 차가 너무 나(1대 1.5), 갓길로 잘못 들어간 차가 올라오려다가는 전복사고를 일으킬 수 있다는 것. 반면 미국은 거의 비슷해(1대 3) 차가 쉽게 주도로로 올라갈 수 있다고 했다.

또 도로 자문위원인 부산대 정헌영 교수는 "우리나라 국도의 대부분은 일제 때 건설된 것을 기본으로 하고 있어 앞으로는 굽이가 심한 구간은 기존 도로를 과감히 포기하고 새 도로를 건설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또 교통 안전을 위해 행정쪽의 건설과 경찰쪽의 교통 관리를 일원화 해야 한다고 정 교수는 강조했다. 일본도 이원화돼 있지만 경찰 내에서도 안전 관리는 별도의 전문가에게 맡기고 있다는 것. 이에 따라 경찰·건교부 등에서 전문가를 차출해 도로관리만 전담하는 기관을 만드는 것도 좋을 것이라고 제안했다.

칠곡·장영화기자 yhjang@imaeil.com,부산·이상원기자seagull@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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