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월산 일자봉 자락의 지맥이 끝을 맺으면서 곳곳에 명당 터를 만들고 마을 앞 문필봉과 연적봉이 앞 다퉈 달려오는 듯한 형상으로 수 없는 인재를 배출한 곳. 영양군 일월면 주실마을.
영양과 봉화를 잇는 지방도를 끼고 일월산 자락에 넓게 형성된 이마을은 일찌감치 실학적 개혁을 실천하고 근대 개화에 눈을 떴던 영양지역 대표적 전통마을이다.여느 마을과는 달리 온 마을이 기와집이다. 한양조씨 병참공파 후손들이 모여사는 집성촌으로 1629년(인조 7년) 호은공 조전(趙佺) 선생이 입향하면서 형성돼 지금도 100여가구가 살고있다.
특히 호은공의 17세 호봉, 옥천형제와 임호, 임악형제 등 사종반이 1677년때부터 매년 과거에 급제하면서 마을의 만년대기를 닦는 기틀을 마련했다.
이후 과거제가 폐지된 1894년까지 265년간 이 마을에는 63명의 선비들이 수많은 문집과 글을 남겨 벼슬길 이상의 영광을 누리면서 문향의 반석을 다졌다.
이때문에 이 마을에는 대대로 시인묵객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았으며 조선후기 실학자인 정약용과 이가환, 채제공 등과 교류하면서 개혁을 실천, 관례와 혼례를 통합하는 등 생활개혁을 추진해 주실의 개혁전통을 세우기도 했다.
월록서당(경상북도 유형문화재 172호)과 호은종택, 만곡정사, 침전정과 학파정 등은 일찌감치 유학을 새롭게 개혁해 후손들에게 배움을 열었던 선조들의 깊은 뜻이 서려 있는 곳이다.
구한말 변혁기를 맞아서는 의병운동과 개화개혁운동, 해외 신학촌 건설, 독립운동 등에 뜻을 세운 인물이 수없이 배출됐으며 대표적 인물로 조승기 의병장, 조병희 선생, 국민교육회 조창기 간사, 독립운동가 조만기 선생 등이 있다.
마을 안에서는 영진의숙, 배영학당, 동진학교가 세워져 노동야학과 여성야학을 일으켜 민족교육에 나섰으며 1920년대에는 노동공제회, 신간회, 청년동맹 등 민족운동에 동참하면서 영양지역 독립운동사에 큰 족적을 남겼다.
특히 민족시인 지훈 조동탁과 세림 조동진 형제의 아버지였던 조헌영 선생은 신간회 중앙회 검사위원을 맡아 활동하면서 1928년부터 양력과세로 마을 설 문화를 개혁해 지금에 이른다.
이같은 개화분위기는 신교육의 열기로 이어져 해방이후 서울과 해외로 유학한 이가 무릇 수백여명, 이중 30여명이 넘는 박사가 배출되고 대장급을 비롯 군장성만 10여명에 이른다.
이마을 출신으로는 국립중앙도서관장을 지낸 조근영, 한글 맞춤법통일안 입안자 조헌영 박사, 경북도지사를 지낸 조준영, 여류시인 조애영, 조지훈 시인, 조동걸 박사 등이다.
영양.엄재진기자 2000jin@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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