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동맹휴학생, 역사 왜곡 항의

"어린 우리를 군수물자.식량 증산에 동원해 수탈을 일삼고, '조센징은 맞아야 된다'며 걸핏하면 목검으로 때려 놓고는 반성은 커녕 역사교과서를 왜곡해?"

백발의 70대 노인 10여명이 2일 오후 영주 순흥초교로 모였다. 이 학교의 1945년 2월 졸업생들이자, 그 전해 9월 90여명이 '동맹휴학' 저항사건을 일으켰던 주인공들. 유례를 찾기 어려운 사건의 주인공들인 만큼 요즘의 일본 교과서 왜곡에 대한 분노도 남달랐다.

"동맹휴학으로 학교가 발칵 뒤집히고 안동에서 칼을 차고 소총을 멘 일본 헌병대가 말을 타고 출동할 정도였지". 배일환(71.풍기)씨의 회고에 김성한(71.순흥)씨는 "주동자인 이석환(95년 작고) 급장이 퇴학 당하고 나머지는 수신(도덕) 점수가 병.정으로 나왔었다"고 거들었다. 김씨는 그래서 농업학교에 원서를 못내 진학을 포기했다는 것.

동맹휴학은 일본인 교장.담임이 제국주의 사상을 주입하고 조센징이라며 걸핏하면 목검으로 때리면서 멸시했기 때문이라고 김씨가 설명했다. "퇴비.관솔따기 등에 매일 동원돼 지쳐 있었지만 월요일 조회 분열식 때 목소리가 작다고 목검을 휘둘렀어. 한 여학생이 '나쁜 놈'이라고 대들었다가 전원에게 기합까지 돌아 왔지. 이때부터 '일본놈으로부터는 배울 게 없다'는 공감대가 형성돼 급장이 동맹휴학을 주도했어".

박근원(73.순흥면)씨는 "그 다음날 학교 인근 야산에 올라 가 '일본인 선생 돌아가라'는 구호를 외쳤다"고 했다. 황재천(71.서울)씨는 "전쟁 말기에는 선생이 놋그릇은 물론이고 솔방울.소똥까지 가져 오라 해 학교 다니기가 고역이었다"고 했다"

이들이 이날 모인 취지는 그러한 아픈 경험들의 기록으로 만들어 후인들에게 알리자는 것. 우용택(70.고양)씨는 "일본 역사교과서 왜곡 파동을 보면서 몇달 전부터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우리들의 동맹휴학 사건을 정리해 남기자'는 뜻이 모아졌다"고 했다. 그래서 이들은 당시 체험을 각자 적어 이날 들고 모였다는 것이다.

영주.김진만기자 factk@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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