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새영화-소름

30년전 살인사건이 일어났던 낡은 미금아파트 504호에 청년 용현(김명민)이 이사온다. 택시운전을 하는 청년은 편의점에서 밤샘 아르바이트를 하는 510호여인 선영(장진영)에게 호기심을 느낀다. 남편에게 매맞고 사는 그녀는 어느날 그 앞에 피투성이가 된채 나타난다. 사고사인지 계획된 살인인지 알 수 없지만용현은 선영을 도와 죽은 남편을 야산에 묻는다.

영화의 주무대인 미금아파트는 무덤이며 괴물이다. 흉물스런 외양에 깃든 사악한 기운이 영화전체를 짓누른다.

505호에 사는 작가(기주봉)는 504호에 얽힌 사건들을 용현에게 일러준다. 용현이 이사오기전에 살던 광태라는 젊은 작가 지망생이 불타 죽은 일,30년전 바람난 남자가 아내를 죽이고 도망친 뒤 갓난아기 혼자 아파트에 남아 며칠동안 울고 있었던 일 등 540호에는 이상한 기운이 서려있다는 속삭임이다.고아인 용현은 30년전 504호 살인사건의 생존자인 갓난아기가 자신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영화는 인간의 이기심과 어리석음에 관해 얘기하고 싶어하는 그 무엇이 있다. 영화의 전체 구조가 드러나는 후반부, 지금까지의 일들이 과거와 하나의 실타래로 엮인다. 미금아파트가 흉칙한 괴물처럼 보이는 것도 이 순간이다.

귀신이 나오지 않고도 공포를 설득력있게 전달하는 '소름'은 윤종찬 감독이 미국유학 시절 만든 단편영화 '메멘토'를 업그레이드한 영화. 과거 공포영화들과 전혀 다른 새로운 심리 공포물이다.

"IMF가 터진 뒤 한국에 돌아왔는데 한국사회 자체가 굉장히 불안하고 어수선했다. 과거엔 뭔가 타도할 대상이라도 있었는데 완전히 단절된 사회라는느낌이 들었고 그런 한국사회가 무섭고 끔찍했다. '소름'에 그런 기운을 담고 싶었다".

감독의 말이다. 하긴 재개발 직전의 미금아파트가 우리 사회인 듯도 싶다.

배홍락기자 bhr222@imaeil.com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