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시와 함께하는 오후

혼자 시간을 견디며 서 있었던 것이다아버지 뒷산으로 가 눕고

일곱 자식 세상으로 길러낸 집의 뼈대들

하나 둘 허물어지는

흙담이 내려앉고 외양간이 무너지고 오래된

제비집이 툇마루에 흙과 떨어져 쌓이는

텅 빈 집,

모시고 간다간다 하던 아버지 제사

빈 고향집에서 지낸다

큰방 아랫방 아궁이에 군불 들어가는 소리

타다탁 그러다 굴뚝 위로 연기 솟아오르고

무너진 담벼락 위로 아버지 산소가 있는

뒷산에서 빈집으로 바람이 들어온다

-이종암 '빈집'

지금도 시골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다. 그야말로 비바람 속에서 혼자 시간을 견디는 빈집이 수두룩 하다. 이 빈집에서 난 일곱 자식들은 모두 도시로 나갔다. 아버지의 혼령만 차마 못떠나고 빈집 주변을 떠돌고 있다.

이 시는 도시화, 자본주의화 된 현실의 반대편을 그리고 있다. 이것도 시인에게는 자본주의에 대한 저항이다. 폐허가 된 농촌현실에 집요하게 매달리는 것은 일제 식민지시대 잃어버린 모국어에 집중한 선배시인의 시적 전략을 되새기는 일이기도 하다.

김용락〈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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