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국민훈장 애족장 최주형 장군 유족 최두진씨

"이제 눈을 감아도 한이 없습니다". 조부의 항일 공적을 인정해달라며 경주보훈지청을 비롯, 각계에 호소해 온 최두진(74·대구시 동구 신암1동)씨. 최씨는 의병대장 신돌석 장군 영솔장으로 활약한 조부 최주형 장군(본지 2000년 8월14일)의 공적이 인정돼 이번 광복절에 국민훈장 애족장을 받게 되자 날아갈 것 같았다.

"할아버님의 항일 공적이 뚜렷한데도 국가유공자로 인정받지 못해 광복절만 되면 조상에게 큰 죄를 지은 심정이었습니다. 지난 85년 국가보훈처에 독립유공자로 인정해 달라며 포상을 신청했다가 반려당한 뒤 4차례나 신청서를 더 냈습니다".

집에서 최중형으로 불렀으나 신돌석 장군 전기에는 영솔장 최주형으로 기록돼 있어 이명동인(異名同人)을 입증하는데만 꼬박 15년이 걸렸다. 작년 이명동인이 확인되자 국가보훈처가 또 다른 자료를 요구해 전국 국립도서관과 독립기념관, 대학도서관을 쫓아다니며 증빙자료를 모아 확인시켰다.

의병대장 신돌석 장군의 실기에 따르면 영양 석보면 포산리에서 태어난 최주형(일명 중형) 장군은 나라잃은 슬픔에 당시 영덕 축산면 복평리에서 신돌석 장군이 창군한 영릉 의병진에 가담했다. 신 장군의 유격전법을 익힌 최 장군은 영솔장(領率將)이란 중책을 맡았다. 계속되는 전투 중에 1907년 6월26일 영덕 병곡면 아곡전투에서 전사했다. 당시 나이 33세. 그후 후손들은 영덕읍 우곡동에 순국기념비를 세웠다.

장군의 손자 최두진씨는 현재 30평짜리 단독주택에 부인 박옥선(68)씨, 아들 성택(47)씨 부부, 손자, 손녀 등 3대 일곱 식구가 어렵게 살고 있다.

경주·박준현기자 jhpark@imaeil.com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