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어있던 영어찾기
"가족도 소중하지만 당신의 꿈도 포기할 수 없죠.…다시 시작하세요". 헤드폰을 끼고 영어회화 공부에 열심인 탤런트 이영애가 등장하는 한국통신 기업PR TV광고의 한 장면이다. 광고가 사회현실을 그대로 반영하는 거울인 점을 비춰보면 아줌마들의 영어학습 바람도 새삼스러울 것이 없다.
실제로 대구시내의 각 도서관이나 여성회관, 대덕문화전당 등에서 운영하는 영어강좌에는 주부들의 열기가 뜨겁다. 주로 30대 후반에서 많게는 70대까지 연령대도 다양하다. 아이들을 어느 정도 키워놓은 이때가 아줌마들에게는 가장 자유로운 시기. '나'에 대한 투자를 생각하게 되는 시기이기도 하다. 시간과 경제적 여유를 찾은 아줌마들은 영어를 바탕으로 삼아 이곳에서 제2의 인생을 찾는다.
아줌마들이 이곳으로 몰리는 이유는 영어를 좀 더 쉽게, 부담 없이 배울 수 있는 장점이 있기 때문이다. 대구시여성회관(351-0195)의 경우 올 9월부터 시작하는 '중1 교과서반'과 '회화반'은 접수 3일만에 등록이 마감될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동부여성문화회관(951-0185∼7) 영어초급과정도 지난달 23일부터 접수, 열흘만에 마감된 상태. 남부도서관(620-5533) 교양담당 배성호씨는 "8월은 휴가철이라 등록마감이 1주일 정도 걸렸지만 평소엔 접수시작 4일만에 마감될 정도로 영어강좌가 주부들에게 최고 인기"라며 "수강료가 무료이거나 저렴한데다 실력있는 강사들이 많아 주부들이 몰리는 것 같다"고 했다.
초급에서 고급반까지 5개반을 운영하는 대덕문화전당(622-0763)엔 현재 168명의 수강생이 영어회화를 배우고 있다. 퇴직자 위주의 30여명 남자를 제외하면 대부분이 주부들. 각반의 등록 대기자만 해도 10여명씩 줄을 서 있다.
"작년 10월부터 영어회화를 배우려는 주부들이 부쩍 늘었습니다. 9월 강좌 중 초급Ⅱ는 등록 첫날 마감됐을 정도지요". 대덕문화전당 운영담당 박재홍(여)씨는 "젊은 주부들 가운데 상당수는 자녀들을 가르칠 목적으로 수강하며, 나이드신 분들은 해외여행에서 자극받은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설명했다.
중급반 강사 허진연(여)씨는 "아줌마들의 열기가 수능을 앞둔 고교생에 뒤지지 않을 만큼 열심"이라며 다들 수업시간보다 일찍 와서 예습까지 할만큼 열성이라고 했다.
박운석기자 stoneax@imaeil.com
#1. 박현주(43.대구시 남구 대명9동)
영어회화 강의를 들은 지 1년이 됐다. 처음엔 그냥 한번 들어볼까 하는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했다. 아이들 영어만큼은 과외대신 직접 가르쳐 보겠다는 욕심도 한몫 했다. 지금은 어느 정도 목적을 달성한 것 같아 만족한다. 여덟 살인 막내와는 집에서 간단한 대화정도는 영어로 한다. 무엇보다 아이들에게 공부하는 엄마모습을 보여줄 수 있어 좋다. 몇몇 주위 사람들에게 소개해줬는데 지금은 나보다 더 열심이다.
#2. 손정숙(55.대구시 달성군 화원읍)
지난 98년 10월부터 영어회화교실에 거의 빠짐없이 참석한 터줏대감이다. 덕분에 독일인 사위와의 대화도 어느정도 자유로울 만큼 덕을 톡톡히 보고있다. 무엇보다 30년 이상 집에서 살림만 하다 잃어버린 자신감을 찾은 것이 더 큰 소득이다. 이젠 국내외 어디서든 외국인과 자연스럽게 이야기할 수 있게 된 것이 자랑스럽다. 중급고급반을 같이 듣는다고 욕심 많다는 얘기를 들어도 기분 좋다. 이젠 영어공부가 생활이 됐다.
#3. 우난교(66.대구시 남구 대명7동)
나이를 잊어버릴 정도로 재미있다. 남편과 몇 차례 해외여행을 하는 동안 말을 못해 불편을 겪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심지어는 물건을 잘못 사서 도둑으로 몰려 냉가슴만 앓은 적도 있었다. 이제는 최소한 그런 일은 없을 것이다. 특히 어제보다 발전된 내일의 내 모습을 상상해보면 정말 신이 난다. 뭔가를 해내고 있다는 성취감을 느낄 수 있다. 그만둔다는 것은 생각도 할 수 없다.
대덕문화전당 멀티강의실에서 영어회화 중급반 수업을 받고있는 아줌마들. 왼쪽 서있는 사람이 강사 허진연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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